팔레스타인 문제가 결국 서구의 반유대주의 유전자를 자극하고 있다. 각국의 반유대주의 사건이 기록적으로 늘어났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일상적으로 자행하는 민간인 공격의 참상이 TV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민심을 자극한 결과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정부와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합작이다. 그 결과는 미국과 유럽의 국내 정치에 부메랑이 되고 있다.
두 달 간 2031건, 2020년 1년치보다 많아
내년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의 반유대주의는 10·7 하마스의 '알아크사 홍수' 작전 이후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반인종주의를 표방하는 미국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동맹(ADL)에 따르면 하마스 공격 이후 두달 동안 2031건의 반유대주의 사건이 발생했다. 이중 40건이 물리적 공격 사건이었다. △기물파손 337건 △말이나 글을 통한 괴롭힘 749건 △반유대주의나 반시오니즘 표현이 나온 집회 905건 등이다. 두 달 동안 미국 유대인들은 하루 평균 34건의 반유대주의 사건을 겪었다. ADL이 1979년 같은 조사를 시작한 뒤 34년 동안 가장 많은 수치다. 두 달 간 발생한 사건이 2020년 연중 집계 2026건보다 많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37%가 급증한 것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극한 상황에 내몰리지만,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들이 갈수록 몰리고 있는 것이다.
조나선 그린블래트 ADL 회장은 지난 11일 이같은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놓으면서 "하수구 뚜껑이 열리고, 미국 유대인 공동체들이 증오의 홍수를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공무원과 대학 당국은 반유대주의의 온도를 낮추고, 이러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조처로, 추가적인 폭력을 예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오니즘은 유대인 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운동을 말한다. 반유대주의와 동일하지는 않다. 시온주의자 중에도 반유대주의자가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증오의 홍수를 맞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시위 도중 한 유대인 남성이 머리를 맞아 사망했고, 지난 3일 필라델피아 반유대주의 시위에서는 유대인 음식 팔라펠 상점 앞에 모인 군중이 "집단학살을 저지르고 있다"고 외쳤다.
인종주의는 내년 11월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예비후보에 의해 증폭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6일 뉴햄프셔주 유세 중 "라틴 아메리카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가 우리나라의 피에 독을 풀고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파시즘 전문가인 제이슨 스탠리 예일대 교수는 로이터통신에 "트럼프의 말은 '유대인이 독일인의 피에 독을 푼다'는 아돌프 히틀러의 말을 연상시킨다"면서 "트럼프는 집회 연설 때마다 이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구사, 이민자들의 안전이 매우 걱정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불법이민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고 이슬람권 출신의 합법적인 이민도 제한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중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골란고원을 '이스라엘의 영토'로 각각 승인했다.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백인우월주의·인종주의·반이슬람주의의 아이콘이다. 반유대주의의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작용과 반작용의 승수 효과를 통해 미국 사회의 '핏줄 갈등'을 높인다는 점에서 똑같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력 진압이 미국과 유럽의 반유대주의를 강화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미국 주요대학 총장들이 의회 청문회에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입장 발표를 강요당하고 그 결과 일부 총장이 사퇴하는 사태는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한다.
반유대·반이슬람 모두 인종주의로 수렴
반유대주의와 반이슬람은 모두 인종주의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스라엘군의 하마스 강경 진압을 지지하는 바이든의 이중적인 접근은 결과적으로 트럼프의 선거운동을 도와준다.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를 비난하는 여론과 친이스라엘 노선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지만, 트럼프는 보다 선명하게 지지층의 인종주의 정서를 표로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의 선봉에 선 무슬림을 비난하는 것도 트럼프 득표의 통로가 된다. 미국의 반유대주의 정서는 백인우월주의 정서와 큰 틀에서 같은 맥락이다.
19일 발표된 뉴욕타임스·시에나대학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말해준다. 바이든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지지는 33%로, 반대 57%에 24%포인트나 뒤졌다. 특히 30세 이하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이-팔 분쟁 지지가 20%에 불과했으며,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은 26%였다. 같은 연령대 응답자의 45%는 바이든이 과도하게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 연령층에서 바이든 대통령 직무수행 지지율은 37%로 지난 7월 조사에 비해 2%포인트 줄었다.
가자지구 사태에서 자유로운 트럼프의 전반적인 지지율(46%)은 바이든(44%)에 2%포인트 우세를 보였다. 바이든으로선 선거의 실탄인 정치자금원이자 언론을 장악한 유대인을 무시하기도, 그렇다고 계속 이스라엘을 내놓고 지지하기도 곤란한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미국 내 인종주의 갈등은 가자지구 사태와 무관하게 바이든 임기 중 매년 기록적으로 악화돼 왔다. 지난 3월 26일 발표된 ADL 2022년 연례보고서는 3897건의 반유대주의 사건을 집계했다. 2021년(2717건)에 비해 36%가 늘어난 것으로 1979년 ADL조사 이후 최악이었다. 대선이 있었던 2020년부터 3년째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2021년 1·6 연방의사당 습격 사건 이후에도 미국 민주주의가 더욱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음을 말해준다. 가자지구 사태는 이미 타오르던 인종주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홍해 항로 위험해지자 러시아 북극 항로에 쏠리는 관심 (0) | 2023.12.25 |
---|---|
가자사태가 자극한 반유대주의 유럽 민주주의 흔든다 (1) | 2023.12.21 |
600만 명 사망, 대선 계기 '약간' 주목받은 민주콩고내전 (0) | 2023.12.21 |
'자기 회의'에 빠진 슈퍼파워, 미국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0) | 2023.12.18 |
블링컨 "미국의 우크라 군사지원, 90% 미국민 호주머니 돌아온다" (0) | 2023.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