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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2024년 한반도 위기

"김정은은 '두 국가'와 '두 민족'을 말했다. 당장 총련이 뒤집혔다"

by gino's 2024. 2. 8.

[강인덕 장관 인터뷰 ②] 북한의 '두 국가·두 민족론'

<시민언론 민들레>가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92)을 만났다. 60여 년 동안 북한을 중심에 두고 세계를 읽어온 강 장관의 GPS는 명료했다. "'우선 '터널 비전(tunnel vision)'을 피하고, 전략적 사고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음식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 자료실에서 4시간가량 진행됐다. 이후 세 차례의 전화 통화로 보완했다. 주제별로 나눠 그 대강을 전한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김정은의 '두 국가론'은 불리한 국면에서 1보 전진을 위해 2보 후퇴하는 '퇴조기 전략'과 오랫동안 방치했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이제라도 내세우려는 전술적 목적이 함께 담겨 있다. '두 국가론'뿐 아니라 '두 민족론'을 제시했다."

강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 국가론'에 가린 '두 민족론'을 짚어냈다. 김일성이 가장 중시했던 '민족'을 떼어냄으로써 사실상 두 민족을 강조했다는 말이다. 그는 "당장 그동안 민족으로 살아 온 조총련에서 난리가 났다. '북에 문의했는데 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총련을 버리겠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전해왔다"고 전했다. 언어의 이질화를 경계했던 김일성 교시에 반해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 평양말과 서울말을 갈랐다"고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유훈에 반하면서까지 '두 민족론'을 내놓은 이유는 "핵을 동족을 향해 발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미국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과 시그프리드 헤커가 '김정은 전쟁 결심'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 인민군에 대남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했다.

김 주석의 1949년 '국토완정' 주장과 달리 김 위원장의 2024년 '남반부 평정'이 한미의 선제공격을 전제로 한 것에 대해 "힘의 차이일 뿐"이라면서 "김일성은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에 이어 노동당 조직인 통일전선부를 해체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없애도 되고, 명칭만 바꿔도 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적화통일을 위한) 대남사업은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의 통일부 인원 감축을 비판하며 "개헌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평화통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관해서는 "법적으로 막지는 못하겠지만, 가급적 설득해야 한다"며 "그보다는 방송, 광고, K-Pop 등을 동원한 스마트 심리전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시정연설 관철을 독려하는 선전화. 매년 20개 군씩 10년 동안 현대적인 공장을 짓자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홍보하고 있다. 2024.1.21.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작년 말 당중앙위 제9차 전체회의와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두 개의 국가론'을 내놓았습니다. 통일·화해·동족'의 개념도 완전히 제거하라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국토를 평정하겠다는 말이 큰 쇼크였다. 할아버지 김일성이 한국전쟁 때 쓴 '국토완정'을 현대적으로 풀어 쓴 거라고 본다. 그렇다면 전쟁을 하겠다는 말인데 전면적인 전쟁 준비로 갈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미뤄두었던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실현하려는 전술적인 목적에서인가. 전략과 전술, 두 가지를 모두 제시한 것 같다. '두 국가론'뿐 아니라 '두 민족론'을 내놓았다."

-김 위원장이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을 없앤다"고 했지만, 두 민족론을 특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두 민족이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 민족은 '역사적으로 사회문화 심리와 언어가 같은 집단'이다. 김일성은 여기에 혈통을 더했다. 공산주의 이론에 민족은 없다. 계급투쟁에 무슨 혈통이 있나. 주체사상 기조에서 보면 역사 발전을 추동하는 건 인민·민중이기 때문에 민족은 가장 중요하다. 김정은은 그걸 떼내면서 김일성 유훈을 어긴 거다. 김일성은 언어와 혈통을 상당히 중시했다. 북한 언어학자가 가로쓰기를 제안하자 '남조선이 안 하는 데 우리만 하면 안 된다'며 언어의 이질화를 경계했다. 김정은은 김일성 교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언어를 버렸다.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해 서울말과 평양말을 가르지 않았나. 또 남쪽의 퇴폐 문화를 차단하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었다."

북한이 21일 공개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정연설 관철을 독려하는 선전화. 2024.1.21.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남과 북이 이제 다른 민족이라는 선언이군요.

"당장 조총련이 혼란에 빠졌다. 같은 민족 엊그제 조총련 '학습조'의 박모 전 조선대 교수가 '선생님 큰일 났습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두 민족을 말했는데 그게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의를 평양에 보냈는데 아직 답이 오지 않고 있다'라고 했다. 조총련이야말로 민족이라는 걸로 살아왔는데 그걸 없앤다고 하니 모두 황당해하고 있다고 한다. 학습조는 조선대 출신으로 조총련 활동에 가장 열렬한 사람들을 칭한다. 그는 '답이 오지 않으니까, 북쪽에서 조총련을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하더라. 조총련의 움직임을 우리 언론이 아는지 모르겠다."

-김 위원장이 '두 국가론'을 내놓기 전에 면밀히 검토하지 않은 건 아닐까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한 3가지 통일 원칙인 '자주·평화·민족대단결'도 버렸습니다.

"주체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민족적 자주성이고 두 번째가 민족의 이익이다. 민족 대단결도 김일성이 강조했던 명제다. 김일성은 '민족 대단결을 위해 사상, 이념, 재산의 유무까지 다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남쪽이 민족의 자주와 이익에 위배되는 행위를 계속하기 때문에 (민족을 없애도) 김일성 주석의 원칙에 어긋난 게 아니다"라고 설명할 거다. 남쪽을 같은 민족으로 보지 않는다는 말이다. 왜 그랬을까. 핵을 사용하면 같은 민족을 공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체제 경쟁에서 뒤진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체제 수호에 엄청난 위협이 도래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이 적당한 때라고 본다. 몇십만 명의 외화벌이 노동자들이 나가 있고, 앞으로도 내보내야 한다. 컴퓨터를 통해 유입되는 바깥세상의 정보도 있다. 우리 드라마와 K-Pop도 체제를 위협한다. 남쪽과의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사실을 더 이상 주민들에게 속일 수 없게 된 것이다. 대내적으로 간부들을 설득할 수 있게 된 정치적 환경도 감안한 것 같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룬 핵개발의 성취와 공포정치로 설득할 힘이 생겼다고 보지 않았나 싶다. 길게 보면 김일성이 4대 군사노선을 내놓은 1960년대부터 계속된 궁핍이다. 김정은은 국제사회 제재를 받았지만, 아버지 김정일 때처럼 '고난의 행군'을 겪지 않은 걸 가장 큰 치적으로 내세울 거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 장관은 일본의 제자들이 매달 보내오는 북한 관련 일본 자료가 도착했다면서 반가워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북한은 어떠한 대남, 대외 정세 분석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 북한이 대화하자고 하면 거절할 나라가 없다. 미국도 응할 거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백악관과 국무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에 대해 '우린 핵을 갖고 있다'고 힘을 과시하면서 대화를 하건, 뭘 하건 유리한 조건이라고 보는 것 같다. 올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 싱가포르나, 하노이 같은 북미 협상을 재개할 때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다는 국제적 관점을 갖고 있지 않나 싶다. 거기다 우크라이나 전쟁 덕분에 국제 정세도 유리해졌다. 관계가 좋지 않던 러시아, 중국과도 돈독해졌다. 4월 총선이 있어 강력한 대북 태세를 보이는 윤석열 정부에 대항하기도 좋은 시점이다. 한편으로 북한 주민을 다독이면서, 남쪽에 대해서는 '해볼 테면 해봐라'고 큰소리치는 거다. 대미, 대남, 대내, 세 가지 대응을 동시에 하는 거라고 본다."

-1949년 김일성 주석의 '완정'과 2024년 김정은 위원장의 '평정‘은 비슷한 말이지만, 김 위원장은 "만약 한미가 공격한다면"이라는 조건절로 말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힘의 문제다. 김일성은 힘이 있었기에 '38선을 때려 부수자'고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책임을 전가하는 김정은의 어법인 점도 있다. 최고인민회의 이후 발언을 보면 인민생활이 개선되지 않은 걸 간부들 책임으로 돌렸다. 전쟁의 책임을 미리 미국과 한국에 돌리는 어법이다. 북한에서 수령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남쪽과의 체제 경쟁에서 졌다는 점을 인정해도 '우리가 졌다'는 표현은 쓸 수 없다. 해서 혁명적 용어를 써야 한다. 바로 레닌이 말한 '퇴조기 전략전술'이다. 1보 전진을 위해 2보 후퇴한다는 개념이다. 공산주의 이론에서 평화적 통일이나 민족은 모두 전술적인 문제다. 전략적으로 보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반드시 폭력(무력)으로만 정권을 장악할 수 있다. 김정은은 '이게 선대가 우리에게 준 혁명의 교훈이다. 내가 언제 그걸 버리겠다고 했나'라고 말할 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들은 언젠가 전쟁을 한번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이 시정연설에서 북한 농촌의 '세기적 낙후성'을 여러 번 강조하고, 도농 간 격차를 줄이겠다면서 매년 20개 군씩 10년간 현대적인 공장을 짓겠다(20X10)고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띕니다.

"바로 그 점이 할아버지나 아버지보다 자신이 더 솔직하게 인민 생활을 보고 있다고 강조한 거다. 핵, 미사일 개발하느라 돌보지 못했지만 '이제는 됐다. 인민을 위해 경공업으로 가겠다'는 말을 한 거다."

강인덕 초대 통일부 장관이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 북한자료실에서 시민언론 민들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2.1. 시민언론 민들레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와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했습니다. 당 조직인 '통일전선부'도 없앨지 주목됩니다.

"통일전선부? 없애도 되고, 이름만 바꿔도 된다. 없애도 무방하다. 대남 사업은 없애지 않을 거다. 인민군 정찰국에서 해도 된다. 조직이나 기구의 구성을 감출 수도 있다. 그 책임은 김여정(당중앙위 부부장)이 담당할 것 같다. 우리 쪽을 돌아보면 그동안 국정원이 너무 상했다. 유감이다. 전문가들이 많이 없어졌다. 대북심리전을 할 때 가장 좋은 부처는 국정원이다. 북한이 드러내는 언어나 위협에만 집중하지 말고, 과거에 어떻게 해왔는가를 보면 나갈 길이 분명해진다. 남쪽의 사회투쟁이건, 경제투쟁이건 크고 작은 투쟁을 죄다 정치투쟁으로 연결시킬 거다. 주사파를 비롯해 동원할 수 있는 세력들이 있다.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가 아니다.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북쪽 주장이나 용어와 일치하는 경우가 있어 오해를 산다."

-통일부가 애매해졌습니다. 북한이 조평통을 없애기 훨씬 전인 작년 7월, 윤석열 정부가 먼저 통일부 교류협력국·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남북출입사무소·남북회담본부 등 4곳을 없애고 인원 80여 명을 줄인다고 발표했습니다.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인원 감축은 잘못된 거다. 공무원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거라고 본다. 자연 감소 인력을 보충하지 않는 방식의 감축을 권한다. 관료들이 앞에선 복종하는 것 같아도, 뒤에선 다르다. 통일부에는 권력과 이권 기관에 가고 싶지 않아 통일부를 선택한 청렴하고 학구적인 두뇌들이 많다. 우리가 개혁하려는 통일문제에 대한 구상을 얼마든지 할 역량을 갖췄다. 북한은 혁명의 한 방법으로 투사들을 대화에 내보낸다. 외교에 익숙한 이들로는 대응이 안 된다. 대화가 없는 지금이 남북대화 요원들을 양성할 적기다. '원'은 연구·교육하는 곳이고, '부'는 사업부서다. 두 가지가 결합된 게 지금의 통일부다. 인원을 줄이지 말고 원의 일을 시키면 된다. 북한의 결정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사업으로는 인도적 지원을 국제사회와 연계해서라도 계속 전개해야 한다. 교육 기능도 중요하다. 북한의 결정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헌법 3조(영토조항)와 4조를 개헌하지 않는 한 우리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밀고 나가야 한다."   강인덕 장관 인터뷰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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