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당최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지만 두 가지 희망이 있다. 우선 트럼프가 생각하는 김정은과의 사랑이 스토미 대니얼(포르노 배우)과의 사랑처럼 이미 지나간 일이길 바란다. 다시 사랑을 시도하지 않을 거다. 재선하면 스스로 '끝내 버리겠다'라고 다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하겠지만, 해결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한반도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에 정신 팔릴 거다. 또 트럼프 주변에는 몇몇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 (캐런 하우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온갖 '추측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추측이라고 같은 추측이 아니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미국의 보수 원로 3명의 견해는 결이 달랐다. 미국 보수 주류의 생각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귀를 열어 둘 필요는 있다. 누구도 앞날을 예측할 수 없지만, 경륜에서 나오는 통찰이 담겼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 전망 및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원로들의 시각을 두 번에 나눠 소개한다. 캐런 하우스 전 발행인(77, 현 하버드대 벨퍼 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설립자(82),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자)으로 꼽히는 폴 월포위츠 전 세계은행장(80)이 그들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던 '아산 플래넘 2024'에서 접했다. '미국 대선 세션'의 사회자는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73,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트럼프 달라졌다" 자문역 퓰너의 '옹호론'
세 명의 원로 중 도널드 트럼프를 공개적으로 지지해 온 퓰너가 먼저 사회자의 지명을 받았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를 도왔고, 이후 인수위원회에도 참가했다. 이번엔 트럼프 재선을 전제로 정책 제안서를 작성하는 헤리티지 재단의 '프로젝트 2025'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공화당이 충분히 보수적이지 않다"라면서 1973년 헤리티지 재단을 설립, 미국 보수의 대표적 싱크탱크로 키워낸 인물이다.
세션에 함께 참가한 하우스와 월포위츠를 의식, "미국 내에서 내가 정파적인 인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커트 캠벨(국무부 부장관)이 캠프 데이비드(한미일 정상회의)에서 거둔 성과를 평가한다. 이 자리에 있는 미국 동료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아브라함 협정을 지지할 거다. 누가 백악관 주인이 되건 대외정책에서는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이라고 전제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스라엘-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담은 것으로 조 바이든 행정부도 계승하고 있다) 이어 내놓은 건 트럼프를 위한 변호 또는 옹호론이었다. 미국 보수의 사고에 꼭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직면해 온, 또 직면할 현실이라는 점에서 귀 기울일만하다.
트럼프가 워싱턴 정치를 전혀 모르는 아웃사이더로 시작한 1기 행정부와 달리 2기 행정부에서는 다른 면모를 보일 거라는 게 주장의 요체다. 대한민국 청중을 상대로 한 토론이지만, 한반도보다 중국을 앞세웠다. 트럼프가 1기에는 견고한 원칙은커녕 거래주의적 생각에 사로잡혔었지만, 4년의 집권 경험 덕에 이제 세계, 특히 중국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워싱턴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올라 펼쳐 든 월스트리트저널 1면 머리기사에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자동차에 부과한 관세의 수준(현 25%에서 100%로 인상)을 보고 "바이든이 아니라 트럼프가 한 말이 아닌가, 헷갈렸다"라면서 중국 정책에 관한 한 초당적인 입장임을 상기시켰다. "트럼프는 이제 미·중 관계에 대한 현실적인 관점을 갖게 됐다"라면서 대만 안보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흔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1981년 이후 모든 미 대통령 한국에 '추가 기여' 요구"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도 '조심스러운 낙관론'을 펼쳤다. "이미 이긴 전투를 다시 싸우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도 "트럼프가 재임중 재협상을 말했을 때 일부에선 너무 거칠다고 비난했지만, (미국 입장에서) 성공적으로 달성한 게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트럼프는 FTA를 다시 손대지 않을 거로 전망했다.
한국이 주한미군 분담금을 대폭 인상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거라는 전망에 대해서도 비슷한 낙관론을 내놓았다. 퓰너는 "미국이 한국에 방위비분담금을 요구한 건 1981년부터"라면서 "이후 6~7명의 미국 대통령이 지나는 동안 같은 문제를 논의해 왔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도 "한국이 더 기여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경고했었음을 상기시키면서 "트럼프만 유독 분담금 인상 요구를 한 건 아니다"라고 변호했다.
한미가 지난 4월부터 진행 중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에서 바이든 행정부 역시 인상 요구를 하는 것도 언급했다. "이미 1기 행정부에서 원한 걸 얻은 만큼 한국을 더 몰아붙이는 대신 다른 걱정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트럼프는 타임지 인터뷰(4.30.)에서 자신이 한국과 방위비분담금을 5배 인상키로 합의했는데 바이든이 '거의 아무것도 아닌 수준'에 합의했다고 우겼다. 한미는 2021년 '13.9%+한국 국방예산 증가율' 인상에 합의한 바 있다. 퓰너는 청중 질문에서 김종훈 전라북도 경제부지사(전 통상교섭본부장)가 트럼프가 타임지 인터뷰에서 실제 2만 8500명인 주한미군 수를 4만 명으로 언급한 것과 관련, "왜 미국 내에서 이를 수정토록 하지 않나'라는 힐난성 질문에도 "이제는 정책분야에서 더 나은 사람들이 보좌하는 만큼 그 차이를 배우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를 옹호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얼마나 배우게 될지는 다른 문제"라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하우스, 혐오한다면서도 트럼프 당선에 무게
트럼프 캠프에 한 발을 들여놓은 퓰너의 트럼프 옹호론은 그다지 객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가까이에 있는 인사인 만큼 경청할 대목이 있다. 트럼프 2기가 다를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은 하우스 전 발행인이나 월포위츠 전 세계은행장도 큰 틀에서 동의했다. 트럼프를 위태롭게 바라보면서도 희망을 거두지 않으려는 사고가 엿보였다.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거침없이 쏟아낸 건 저널리스트 출신 하우스였다. 그는 대선 전망과 관련, "바이든은 노화가 눈에 띄게 진행된 데다 그의 부통령(카멀라 해리스)는 능력 미달이다"라고 혹평했다. "가자 지구 사태와 같이 온갖 이슈가 바이든의 인생을 복잡하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곧이어 "온갖 법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안 될 거라는 데 걸지 않겠다"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트럼프에 대한 절망과 미국 사회에 대한 절망을 감추지 않았다.
"트럼프는 완전히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뭘 결정하고도 다음 날 아침에 바꿀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주한미군 수조차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트럼프뿐이 아니다. 슬프게도 많은 미국인들에게 사실(facts)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됐다"라면서 "소셜 미디어 탓에 위대한 미국 대중은 사실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트럼프는 지난 30일 대니얼에 대한 입막음 돈 지불과 회계 부정 혐의로 유죄 평결을 받았지만, 24시간 내 730억 원의 후원금을 거뒀다)
하우스가 유일하게 희망을 내비친 건 다음 대통령 임기 이후였다.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게 미국에 나쁜 뉴스이지만, 좋은 뉴스는 누가 되건 4년 뒤엔 다 사라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해선 퓰너와 마찬가지로 "이번엔 몇몇 똑똑한 사람들의 보좌를 받을 것"이라면서 막연한 희망을 털어놓았다.
그는 "워싱턴의 민주당원들은 트럼프가 당선되면 민주주의와 관료제도를 완전히 파괴하고, MAGA(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사람들을 연방정부에 배치할 거라고 경기 들린 듯 말하지만, 공직을 전부 채울 만큼 충분한 MAGA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상원 인사 청문회도 거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시종 희미한 희망과 선명한 혐오 사이를 오갔다. 그는 (행정부 관료들이) 트럼프를 상식적으로 교정하는 장치가 있게 될 것"이라면서도 "가드레일(보호난간) 정도로는 안 된다"고 단언했다." 트럼프는 가드레일 정도는 개의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의 주변에 최소한 전기 충격기 같은 시스템을 설치, 그가 미친개처럼 울타리를 뚫고 돌진하지 않도록 (필요하면) 충격을 줘 멈추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월포위츠 "좋은 인재, 트럼프 행정부 안 갈 것"
퓰너와 하우스가 트럼프 2기 행정부에 거는 희망의 근거로 대통령 주변에 포진할 제법 똑똑한 보좌진을 들었지만, 월포위츠의 생각은 달랐다. 사회자가 '프로젝트 2025'의 국방 부문 집필자이자 트럼프 행정부 국방장관 대리였던 크리스 밀러의 주한미군 분담금 대폭 인상 및 한국의 독자 핵무장 허용 가능성 제기에 관해 묻자, 밀러 개인 또는 밀러의 생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되레 사회자에게 "그 사람 이름이 무엇이었냐"고 되물은 뒤 "누가 당선되건 4년 임기만 남겨놓을 것이기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레임덕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많은 미국 대통령의 2기 행정부는 좋지 않았기에 좋은 인재를 뽑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드샌티스(플로리다주지사)와 같이 좋은 인재들은 트럼프를 비판해 왔는데 트럼프는 주변에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두지 않을 것이기에 행정부를 채우는 것 자체가 도전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과 트럼프 당선 시 한국의 대처 방안에 관한 보수 원로들의 조언은 따로 떼어내 살펴볼 필요가 있다. ☞ 미국 보수원로 3인의 미 대선 전망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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