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다고?) 미국민은 한반도 분쟁에 핵무기가 포함된다면, 한국을 그냥 버리려고 할 거다. 한국에 전쟁을 예방할 최선의 방책은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북한이 공격하면) 매우 강력한 재래식 전력으로 대규모 보복하는 것이다. 한국이 핵 개발을 더 자주 거론하고, 그 방향으로 갈수록 상황은 더 불편해질 거다." (폴 월포위츠)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온갖 '추측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추측이라고 같은 추측이 아니다. 최근 서울을 다녀간 미국의 보수 원로 3명의 견해는 결이 달랐다. 미국 보수 주류의 생각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귀를 열어 둘 필요는 있다. 미국 대선 전망 및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원로들의 시각을 두 번에 나눠 소개한다. 폴 월포위츠 전 세계은행장(80), 캐런 하우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발행인(77, 현 하버드대 벨퍼 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설립자(82)가 그들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던 '아산 플래넘 2024'에서 접했다. '미국 대선 세션'의 사회자는 윤영관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73,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
네오콘 월포위츠의 '핵 반대론'
미국 국방부 부차관을 지낸 폴 월포위츠 전 세계은행장은 미국이 한국의 자체 핵 개발을 반대하는 이유로 미국민의 반대를 꼽았다. 미국 대선에서 백악관 주인이 누가 되느냐의 문제와 다른 차원의 설명이다. 미국의 핵무기 독점주의와도 거리가 있다. 미국이 동맹을 방기할 수도 있다는 말은 한국의 핵무장론에 대한 가장 뚜렷한 반대였다. 월포위츠는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한다면 한국이 국가 방위를 위해 자체 핵무기 개발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사회자의 말에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면서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북쪽에 추악하고 불쾌하며 무자비한 친구가 핵무기를 갖고 있는데 남한은 핵무기 개발을 하지 못하는 게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건 공평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전쟁을 확실하게 예방할지를 말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월포위츠는 "내 좋은 친구 몽준(정몽준 회장)과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이 경우엔 다르다"라고 말했다. '아산 플래넘'을 주최한 아산정책연구원의 정몽준 명예 이사장은 전술핵 재배치를 주장해 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아래서 부장관을 했던 그는 대표적인 네오콘(신보수주의) 강경파로 꼽힌다. 그런 그도 핵무기 사용을 극도로 꺼리는 심리를 내보였다. 그는 유사시 북한에 대규모 보복을 할 경우에도 "필요하다면, 정말 필요하다면"이라고 두 번이나 전제를 달면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문제에 국한한 입장도 아니었다.
러시아 전술핵 동원에도 재래식 전력 대응이 정답
그는 청중 질문에 답하면서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선택지와 관련해서도 재래식 전력을 강조했다. (2020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술핵 사용을 거론했을 때)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막 국가안보보좌관이었던 로버트 오브라이언이 한 말이 정답"이라고 소개했다. "오브라이언은 푸틴이 전술핵무기를 사용하면, 재래식 무기로 러시아의 군사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말했었다"면서 "북한의 도발이 있어도 비슷한 대응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나는 핵 보복에 무게를 두지 않겠다"라면서 "미국에 많은 경종을 울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핵무기 사용이 미국 내에서 강한 반발을 일으킬 것임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한국이 한반도 안팎에서 미국의 재래식 전력을 강화하고, 한반도 주변에 핵 능력의 존재를 강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작년 8.18 한미일 정상회의) 캠프 데이비드 합의 바로 뒤 일본과 한국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면서 (전략 폭격기가) 이미 일종의 경고 비행을 했었다"고 상기시켰다. 월포위츠가 되풀이 강조한 강력한 재래식 전력에는 미사일 방어(MD) 시스템이 포함된다. 그는 "한미일 3국에 기반한 효율적인 MD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라면서 "최근 이란의 이스라엘 공격에서 입증됐듯이 (미사일) 공격 대상 지역에서만 막을 수는 없다. 경고 레이더와 요격 미사일을을 꽤 넓게 분산 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 재단 설립자는 월포위츠의 MD론에 적극 지지를 표했다.
퓰너와 월포위츠는 트럼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협상에 다시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과의 추문처럼 김정은과의 사랑도 지난 일일 것"이라고 말한 캐런 하우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발행인과 마찬가지로 트럼프-김정은의 로맨스는 다시 없을 거라는 말이다.
"트럼프 3번이나 거절당한 김정은 안 만날 것"
퓰너는 "꽤 성공적인 비즈니스맨이었던 트럼프가 김정은으로부터 (2019년 북미 정상회담을 포함해) 세 번이나 사실상 거절당했다"라면서 "트럼프는 (김정은과의 협상이) 막다른 길인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가 이 친구를 좋아하니까 함께 갈 수 있다'라면서 계속하는 게 통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트럼프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월포위츠도 "퓰너가 말한 대로 김정은은 트럼프를 세 번 당황케 했다"라면서 "(남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트럼프의 허영심에서라도 김정은과 재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 핵이 과거보다 훨씬 확대됐기 때문에 굉장히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이라면서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에 대해 매우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데다가 김정은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것도 미국 내에서 강한 반대에 봉착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내 반대가 "협상을 중단시키기에 충분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이어 "트럼프건, 바이든이건, 취임하자마자 레임덕에 빠질 것이기에 김정은의 약속을 신뢰하는 게 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풀너가 "트럼프가 2기 행정부에선 달라질 것"이라면서 옹호론을 펼쳤다면, 월포위츠는 '트럼프 사용법'을 조언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 현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나르시시즘(자기도취증)'이라는 단어를 자주 꺼낸다. 미국 대통령이라는 직업을 원한다면, 나르시스트가 돼야 한다. 사람들의 숱한 공격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이러한 공격을 즐긴다. 주목받는 걸 좋아해서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에게 가장 잘 먹히는 방식은 아마도 그가 성공을 보게 하는 것"이라면서 "작고한 아베 신조(전 일본 총리)와 같이 일했던 일본인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을 조언한다"는 것.
"트럼프가 '파괴자' 아닌, '혁신가' 되도록 유도해야"
이어 "아베는 분명 트럼프의 마음과 머리, 허영으로 들어가는 길을 발견했다"면서 "트럼프에게 어떻게 성공을 제공할지도 파악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에게 캠프 데이비드 합의 공로의 일부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도 말했다. 마지막으로 "트럼프가 '파괴자'가 아니라, '혁신가(innovator)'가 되게 하라. 트럼프는 자신이 주목받는 한, 두 역할을 모두 좋아할 거다. 여러분은 트럼프가 옳은 방향으로 주목을 받기를 바라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과 관련, 하우스와 월포위츠는 캠프데이비드 3각 협력체제의 유지를 강조했다. 하우스는 미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한미일이 "3각 협력체제를 유지하는 게 합리적"이라면서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현재의 협력 방향을 유지하라고 한국에 조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우스는 다만, 3국 협력체제는 "한국이 중국에서 고립되는 것을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거나, 3국 협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트럼프의 행동을 보고 기겁을 한다면 깨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한미군과 관련, 하우스는 "개인적으론 트럼프가 주한미군을 철수하지 않을 거라고 본다"라면서 "퓰너가 말한 대로 그동안 계속 논의했지만, 주한미군이 미국에 이익이 되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던 일"이라고 말했다. "조지 H. 부시의 말"이라면서 "미국이 한국을 잃는다면 아주 난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월포위츠도 "내가 한국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캐런의 제안으로 말을 시작할 것"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용산'은 이들의 말을 경청했다. 아산 플래넘 패널들은 이날 행사 뒤 대통령실을 방문했다. ☞ 미국 보수원로 3인의 미 대선 전망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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