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 사라졌다. 올해 들어 첫 대통령 부부의 해외 순방에 즈음해 정부가 내놓는 설명에 윤석열 대통령의 특허 격인 '1호 영업사원'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부부는 10일 투르크메니스탄을 시작으로 5박 6일 동안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을 순방한다.
지난 7일 대통령실의 순방 관련 브리핑에는 아예 '세일즈 외교'라는 말도 보이지 않았다. 해외 순방이 없었던 6개월 동안 가장 큰 변화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 차장이 강조한 주안점은 생뚱맞았다. 이른바 '한-중앙아 K-실크로드 협력구상'이라는 아이디어를 앞세웠다. 중국이 건설 중인 일대일로(BRI)처럼 육상·해상의 물리적 연결통로와는 거리가 멀다. 김 차장은 "대한민국 최초의 중앙아 외교전략"이라고 강조했지만, 실제 내용이 채워지기 전에는 말 그대로 '구상'일 뿐이다.
올해 첫 순방 외교의 핵심이 자원 확보인지, 세일즈 외교인지, 둘 다인지 분명치 않다. 어떤 경우에도 실적을 올리면 국민으로선 나쁠 게 없을 터이다. 취임 2년 동안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영업활동을 했다는 게 정부 주장이지만, 딱히 손에 잡히는 성과가 없었다. 되레 불필요한 말로 없던 '외교 리스크'를 만들거나, 허황한 기대를 하게 했다. 세일즈 성과는커녕 정상외교 결과 대한민국의 기왕의 국부가 뭉텅 빠져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대통령 부부의 6개월 만의 해외 순방을 계기로 '1호 영업사원'의 씁쓸한 추억을 되살리는 까닭이다.
무기·원전·건설 요란했던 '세일즈'…성과는 미지수
엑스포 참패 뒤 슬그머니 퇴장? '우크라 특수' 감감
대통령은 2023년 1월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 되레 외교 갈등을 촉발했다. "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말해 이란 정부의 공식 항의를 받았고, 테헤란 민심은 들끓었다. 4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느닷없이 우크라이나에 조건부 살상무기 지원 방침을 밝혀 한·러 관계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같은 해 7월의 리투아니아 빌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은 폴란드, 우크라이나 방문은 '정상 리스크'의 정점이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에 '생즉생, 사즉사'를 강조하며, "군수 지원을 늘릴 테니 승전하라"는 덕담을 던졌다. 영업사원답게 '드니프로강의 기적'을 강조하며 우크라 재건 특수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국내 증시에선 일부 건설사 주가가 치솟았다. 바르샤바에서는 '우크라 재건 협력 기업 간담회'를 요란하게 개최했다. 같은 해 3월 세계은행·유럽연합(EU) 집행위·유엔이 공동발표 한 우크라 복구 비용은 4110억 달러(518조 원)이었지만, 대통령실은 1200조 원으로 추정했다. 유독 대한민국 대통령실에서만 요란했던 우크라 재건 특수는 감감무소식이다. 국내에서 집중 호우 탓에 수십 명이 사망한 기간에 2박 3일 연장한 키이우 방문이었다. 이 와중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가 빌뉴스 도심의 명품 가게를 둘러보는 장면이 현지 언론에 보도돼 물의를 빚었다.
'1호 영업사원'이 취임 뒤 세일즈 외교에 가장 공을 들였던 것은 사우디아라비아 네옴시티 건설사업과 부산 엑스포라는 두 마리 '금 토끼'였다. 사우디 왕실이 5000억 달러(약 677조 원)를 투입하는 네옴시티 건설에 지분을 넓히고, 43조 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8조 원의 부가가치 유발이 기대된 엑스포를 유치하겠다는 포부였다. 대통령은 엑스포 주최 도시 결정투표(11.28.)를 한 달을 앞두고 작년 10월 사우디를 방문해 '선의의 경쟁'을 다짐했다.
무기시장 점유율 줄고, 네옴시티 수주 실적 미공개
불필요한 외교 리스크, 이란·러시아 관계 악재 작용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수많은 해외 출장의 명분으로 내걸었던 게 부산 엑스포 유치 외교였다. 그러나 국제박람회기구(BIE) 투표 결과는 참담했다. 사우디 119표 대 대한민국 29표. 대통령이 11월 29일 대국민담화 자리에 선 이유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한국 기업들이 엑스포 헌납 대가로 네옴시티 사업의 '노른자위'를 차지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아라비아 상인의 상술에 놀아난 꼴이다. '1호 영업사원'이라는 말이 사라진 건 이즈음이다.
하필 세일즈 주력상품이 무기와 원전이었다. 폴란드가 K2 전차와 K9 자주포 등 124억 달러 상당의 한국 무기 구매 계약을 체결한 건 2022년 말. 대통령의 세일즈와 무관했다. 대통령은 느닷없이 2023년 신년 업무보고에서 방산과 원전, 건설, 인프라를 수출 주력상품으로 강조했다. 생뚱맞은 수출 입국론이었다. 특히 무기 수출과 국방과학 기술 개발을 독려했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전 세계 공관을 수출 거점기지로 만들겠다고 보고했고, 이종섭 국방장관은 민간 방산업체의 에이전트를 자임했다. 그러나 국가적 총력을 기울인 방산 특수도 오래 가지 못했다.
스톡홀름 평화연구소(SIPRI) 집계에서 한국은 2018~2022년 무기시장 점유율이 직전 5년의 1.3%에서 2.4%(세계 9위)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1년 뒤 2019~2023년 5년 동안 2.0%(세계 10위)로 주저앉았다. 프랑스가 러시아를 제치고 2위(11%)로 올라선 게 가장 큰 변화였다.
작년 12월의 네덜란드 방문은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탓에 초점이 흐려졌다. 여론의 지탄을 뒤로 하고 떠난 출장길이었다. 대한민국 검·경은 6개월이 지나도록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 있다. 되레 명품백을 건넨 이를 수사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통령 부부가 출국한 10일 참여연대의 청탁금지법 위반 신고에 대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했다.
명품백 수수로 빛바랜 네덜란드 국빈 방문
권익위, 출국일 맞춰 "위반사항 없음" 발표
반도체·에너지·바이오 산업을 주제로 내세웠던 지난 2월 독일 및 덴마크 국빈·공식 방문은 나흘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 연기됐다. 그 끝에 이뤄진 게 중앙아시아 3국 순방이다. '1호 영업사원'이 무기와 원전 판매에 집중하는 동안 정작 한국 경제의 꽃인 반도체 산업은 공장을 미국으로 옮겼다. 최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고백으로 드러난 '국부 유출'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일 자 타임 인터뷰에서 2022년 5월 방한의 목적은 미국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회수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백악관이 2023년 4·26 정상회담 뒤 발표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액은 952억 달러였지만,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액은 25억 달러. 삼성전자가 당시 25억 달러에서 이후 450억 달러(약 62조 원)로 늘린 텍사스 반도체 공장 투자 증액분을 더하면 두 차례 정상회담 뒤 대미 투자액은 1377억 달러. 무려 '55 대 1'의 역조였다. 수출을 늘리기는커녕 기왕의 주력 산업이었던 반도체 산업 일부를 미국에 내준 꼴이다. 다시 접하고 싶지 않은 '1호 사원'의 영업 실적이다.
대통령은 지난 3일 동해 유전·가스전 긴급 브리핑을 계기로 '자원 사냥꾼'의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나선 에너지와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 3개국 방문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2년여 동안의 경험으로 보아 실적은 뒤에 결산해 봐야 한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김건희 씨의 일정과 관련, "적재적소에서 친교 만찬과 공식 오·만찬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라면서 "부대 일정은 계속 검토해 나갈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부대일정에는 15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관광이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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