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1-05-17|08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23자 |
"5월14일 중간선거에 걸린 상원의석 13석을 모두 석권하겠다". 지난 1월 말 이른바 '피플파워'로 권좌에 오른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대통령의 장담이었다. '사진발 잘 받기'로 유명한 대통령의 얼굴에는 '민의(民意)는 확실하게 우리편'이라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그 결과는?아로요 대통령의 '피플파워연합(PPC)'은 지난 14일 상원의원 선거에서 8∼9석을 획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승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대통령 다음으로 제2권력기관인 상원에서의 절대다수석 확보는 정국 안정의 열쇠다.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상원 절대다수석은 총 24석 중 14석. 기존 상원의원 11명 가운데 3명이 확실하게 PPC편이고, 2명은 우호적이다. 이들 5명과 함께 안정적인 과반수로 평가되는 14석이 되기 위해서는 9석이 더 필요하다. 그러나 여론조사기관마다 전망이 엇갈리기 때문에 8석이 될지, 9석이 될지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13대 0으로 에스트라다 측을 누를 것이라는 착각에서 깨어난 아로요 대통령은 이제 다음 주말까지 계속될 개표결과를 가슴 졸이며 지켜보아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러나 이 정도 성적도 선거 직전에 용감하게 단행한 '무리수' 덕분인지 모른다. 아로요 측은 지난 1일 조지프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을 여전히 '로빈후드'로 생각하는 빈민들의 마닐라 시위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헌법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반란상태(State of rebellion)'를 선포하고, 에스트라다 측 '군중의 힘(PNM)' 상원의원 후보 몇명에게 주민선동 혐의를 걸어 영장없는 체포명령을 내렸다. 선거 이틀전인 지난 12일에는 희한한 코미디까지 벌였다. 아로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정체불명의 암살단이 자신의 장남을 살해 또는 납치하려고 기도한 경찰 정보보고가 있었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보보고를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덜컥 발표한 저의가 무엇이었겠는가. 필리핀 민중은 어리석지 않았다. 출구조사 결과 폭동선동 혐의로 수배중인 판필로 락손 후보는 상원의원 선거에서 43.5%를 득표해 당선할 것이 분명하다. 구속된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의 부인인 루이사 에헤르시토 후보도 당선이 확실시된다. 중간선거는 '이상한 피플파워'의 일그러진 초상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거울이다. 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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