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1-03-29|08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18자 |
프랑스에선 최근 명문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의 새로운 실험을 둘러싸고 논쟁이 붙었다.시앙스포에는 전국의 수재들이 몰린다. 파리대학을 비롯한 일반대학이 대학입학자격시험(바칼로레아)에만 합격하면 무난히 입학하는 반면에 바칼로레아에다 어렵기로 소문난 입학시험까지 치러야만 한다. 수험생의 60%가 1년간의 '특별준비과정'을 거친 뒤에야 응시할 정도. 졸업생들은 평생 시앙스포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을 안고 정계, 학계, 재계, 언론계를 장악한다. 논쟁의 발단은 지난 2월 리샤르 드스쿠앵 시앙스포 학장이 올해부터 소외지역(ZEP) 고등학교 7곳에서 교사추천을 받은 학생들을 무시험입학시키겠다고 밝히면서부터 시작됐다. 우파 재학생들과 시앙스포는 물론 다른 그랑제콜(엘리트 학교) 교수진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반론의 초점은 '기회의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체제가 잡힌 프랑스의 고등교육제도는 철저한 '기회의 평등'을 전제로 한다. 일단 바늘구멍보다 좁은 난관을 돌파한 수재들이 졸업 뒤 기득권을 향유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스쿠앵 학장의 실험도 바로 그 평등성 때문이었다. 우파학생들의 주장에는 시앙스포와 파리이공대학(폴리 테크니크), 국립행정학교(ENA), 고등보통학교(ENS) 등 '그랑제콜'로 불리는 엘리트학교가 점점 특정계층의 전유물이 돼온 사실이 쏙 빠져 있다. 지난 50년 그랑제콜 입학생의 29%가 서민층의 자제였던 반면에 현재는 9%만이 서민층이다. 대부분 고위공무원과 기업체간부 등 돈있고 힘있는 집안의 자제들로 채워졌다. 지난 98년 교육개혁안을 내놓은 자크 아탈리 전 유럽부흥개발은행 총재는 "그랑제콜이 엘리트를 재생산하는 기계장치로 변했다"면서 이러한 '사회적 폐쇄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선발방법의 다양화를 주장한 바 있다. 한달간의 논쟁은 드스쿠앵 학장의 승리로 끝났다. 교무위원회는 지난 26일 압도적인 표차로 그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세계적으로 미국의 경우를 좇아 대학이 교육의 전당이라기 보다는 비즈니스의 모델이 되고 있는 세태에서 시앙스포의 실험은 '신선한 예외'가 아닐 수 없다. 똑같이 '기회의 평등'을 논하더라도 적어도 '기여입학제' 논란보다는 더 아름답지 않은가. 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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