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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롤렉스-한국 디올백 게이트…차이는 검찰과 언론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7. 2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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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 무렵, 검찰 수사관과 무장한 경찰관 40여 명이 대통령 관저에 불시에 들이닥쳤다. 목적은 압수수색. 현관 문을 열지 않자 몇 분 기다렸다가 해머로 부수고 진입했다. 잠옷을 입고 있었을 대통령 가족이 옷을 바꿔입을 시간도 허용하지 않았다. 대통령 경호원들은 "수사 방해하면 반역"이l라는 검사의 경고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수사관들은 집안 구석구석은 물론 양탄자 밑까지 뒤져 10개의 명품시계를 발견했다. 검·경은 곧바로 인근 대통령 집무실을 수색했다."

페루-에콰도르 대통령 간 회담이 열린 지난 4일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리마의 대통령궁에서 발언하고 있다. 롤렉스게이트 폭로 보도 뒤 명품시계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2024.7.4. 로이터 연합뉴스

서울 용산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29일 지구 반대편 페루 수도 리마에서 벌어진 심야 압수수색이었다. 이른바 '롤렉스게이트'의 정점이었다. 때마침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최재영 목사에게서 크리스찬 디올 파우치(디올백)를 받은 사건으로 뒤숭숭하던 국내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독립언론의 보도라는 출발은 같지만, 전개 과정은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기성언론과 검찰의 태세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검·언 '유착'과 '협업'의 차이다.

'서울의 소리'가 풀영상 공개를 통해 대통령 부인에게 디올백을 전달한 건 작년 11월 27일. 헌법상 형사소추권이 면제되는 현직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 부인에 대한 의혹임에도 제대로 된 수사는 첫발도 떼지 않았다. 석 달여가 지났다. 롤렉스게이트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은 페루 대통령실이 16일 내놓은 보도자료 때문이다.

페루 대통령실은 "헌법 상 공화국 대통령의 은행계좌에 (수입과 불일치한 ) 재정적 불균형이 있다는 감사원(CGR) 보고가 없다"고 밝혔다. CGR은 공공정책의 적절한 시행과 국가 자산의 사용을 감독하는 기관. 프레디 히노호사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실 기자회견에서 "기록된 것은 (대통령의) 신고(재산)에 대한 구체적인 감사 절차이며 이는 규정에 따른 76근무일 동안의 기간 내에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국가 수반에게 몇 가지 관찰 내용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고, 대통령은 법적 감사기간 안에 답을 할 것"이라면서 "대통령실은 특히 대통령의 수입이 완벽하게 인정되고, 지출과 일치한다는 두 가지 점을 언급한다"고 강조했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에서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제87차 촛불 대행진이 열리고 있다. 2024. 04. 27. 이호 작가

최 목사가 디올백을 전달한 시점은 2022년 9월 13일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월 19일 "대통령 부부에게 접수되는 선물은 대통령 개인이 수취하는 게 아니라 관련 규정에 따라 국가에 귀속돼 관리된다"고 밝혔다. 사흘 뒤 국힘당 이철규 의원은 "국고에 귀속된 걸 반환하라는 건 국고횡령"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사법적 진공상태'가 오래 되면서 말이 꼬이고 있다. 최근엔 "돌려주라고 지시했는데 일선 행정관이 '깜빡했다'"는 해명이 나왔다.

페루 대통령실이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은 지난 3월 14일 볼루아르테가 수입에 비해 비싼 롤렉스 시계(1만 4000달러·1933만 원)를 차고 있음을 지적한 인터넷 독립언론 라엔셀로나(La Encerrona)의 탐사보도로 시작된 '롤렉스게이트'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서다. '헌법 상 공화국 대통령'은 디나 에볼루아르테 대통령(62·여)이다. 라엔셀로나는 누군가의 주장을 확인도 안 하고 덜렁 전한 게 아니었다. 한 달여 동안의 치밀한 확인 취재 끝에 보도했다. 이후 최소 3개의 롤렉스 시계가 있고, 5만 달러(6900만 원) 상당 카르티에 팔찌도 있다는 후속 보도가 잇따랐다. 이날 압색은 라티나 TV의 생중계로 전국에 방영됐다.

페루 검찰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첫 보도 보름 만에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을 급습했다. 현직 대통령 관저 압색은 페루에서도 처음. 관저에서 찾은 명품시계 10개를 증거물로 압수했다. 검찰이 대통령을 소환해 대면수사를 벌인 건 4월 5일. 대통령은 소환 연기를 요청했지만 검찰을 지휘하는 후안 빌레나 공공부(FN) 장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찰에 출두한 볼루아르테는 꼬박 5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언론보도-관저 압색-대통령 소환까지 22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지난 2월 22일 수도 리마에서 열린 노년층 지원 프로그램 행사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팔에 찬 명품시계가 눈에 띈다. 2024.2.22. 로이터 연합뉴스

대한민국에선 꿈도 꾸지 못할 속도전이지만,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순이다. 페루 검찰은 정부로부터 독립돼 있다. 법무부가 법 집행·범죄 수사·공공의 법적이익 대변을 담당하는 공공부와 정책 개발·사법 개혁을 맡는 법무·인권부 등 두 개 부처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한국처럼 검찰이 법무부 소속인 미국에서도 최근 전직 대통령(도널드 트럼프)과 현직 대통령(조 바이든)의 사저 압수수색이 있었던 걸 보면 제도의 차이로만 볼 일이 아니다. 검찰의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일 거다. 바이든은 부통령 퇴임 뒤 국가 기밀서류를 반환하지 않은 혐의로 작년 10월 한국계 특검 로버트 허에게 5시간 동안 신문을 받기도 했다.

볼루아르테는 검찰 조사에서 언론이 처음 보도한 롤렉스 시계는 자신이 18세부터 일해서 번 돈으로 해명했고, 나머지 명품은 친구이자, 아야쿠차주 주지사로부터 빌린 것이라고 둘러댔다. 압색 다음 날인 30일 TV 대국민연설에선 "깨끗한 손으로 대통령궁에 들어왔고, 2026년 떠날 때도 그럴 것"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개가 짖어도 행렬은 지나간다고 검찰의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빌레나 장관은 5월 27일 볼루아르테가 공직자로부터 부당한 이익을 받았다고 판단, '수동적 부패' 혐의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공직자 재산 신고 항목 누락도 포함된다. 볼루아르테가 보유한 5만 6000달러 상당의 카르티에 팔찌와 50만 달러 상당의 보석류, 25만 달러의 현금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계좌에 출처가 불분명한 40만 달러가 입금된 걸 확인했다. 수사와 별개로 볼루아르테를 '수동적 부패의 장본인'이라고 명시한 헌법소원도 제기했다. 아직 정식 기소는 하지 못했다. 기소돼도 대통령 형사상 불소추특권 때문에 재판 회부는 볼루아르테 임기가 끝나는 2026년 7월 이후 법원이 결정할 문제다.

27일 MBC 장인수 기자가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는 지난해 9월 13일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지하에 위치한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300만 원 상당의 디올(Dior) 명품 파우치를 선물 받았다. 김 씨가 받은 쇼핑백에 디올 글자가 보인다. 2023.11.28. 서울의 소리 유튜브 채널 갈무리

페루 헌법은 대통령 탄핵권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임기 만료 이전이라도 탄핵이 결의되면 내쫓을 수 있다. 의회 정원 137명 중 87명(3분의2)으로 가능한 일. 그러나 의회를 장악한 보수 정당들은 한때 '빨갱이'로 손가락질하던 볼루아르테를 비호하고 있다. 대통령 관저 압색 뒤 장관 6명이 사퇴했다. 의회는 대통령의 검찰 출두 이틀 전인 4월 3일 새 내각을 신임했다. 찬성 70 반대 38, 기권 17표였다.

빈민 가정 출신의 변호사였던 볼루아르테가 주목받은 건 2021년 '자유 페루당'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에 발탁되면서부터다. 카스티요가 이듬해 12월, 의회를 장악한 보수 '인민의 힘'에 의해 탄핵된 덕에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일단 권좌에 오른 볼루아르테는 '자유 페루당'을 버리고, 보수세력과, 기성언론, 군과 결탁했다. 진보세력은 볼루아르테가 2022년 12월 취임 직후 그의 대통령직 승계에 반대하는 시위군중을 군이 유혈진압, 50여 명을 학살한 혐의를 들어 또 다른 헌법소원을 진행 중이다. 볼루아르테가 임기를 마칠 지는 미지수다. 페루학 연구소 3월 조사 결과 국민의 86%가 롤렉스게이트를 알고 있고 다. 볼루아르테의 지지율은 10%.

지난 12일(현지시각) 페루 수도 리마 시내에서 시위대 수백명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페루 옴부즈맨은 이날 지난 24시간여 동안 경찰과 시위대간 충돌로 인한 사망자 수가 7명으로 늘어났다고 확인했다. 시위대는 디나 볼루아르테 신임 대통령 사퇴와 의회 해산을 요구하고 있다.  리마/ EPA 연합뉴스

그나마 페루가 한국과 다른 점은 설령 볼루아르테가 임기를 마치더라도 검찰이 촘촘히 펼쳐놓은 법망을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이다. 독립언론의 취재도 계속된다. 롤렉스게이트 특종을 터뜨린 라엔셀로나의 에르네스토 카브랄 기자는 자신의 X(트위터) 계정에 "볼루아르테의 알리바이를 무너뜨릴 증거를 검찰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그는 6월 14일 국제저널리스트센터(ICFJ) 누리집 기고문에서 "롤렉스게이트가 뉴욕타임스에서부터 한국 언론까지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라며 유독 '한국 언론'을 명시했다. 한국 언론도 "밥값 제대로 하라"는 질책으로 들린다.

한국 검찰이야 더 뭘 말하겠나. 윌 프리먼 미국 외교협회(CFR) 연구원이 페루 정권과 의회의 결탁을 지적하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한 말이 뼈를 때린다. "의회는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는 꼭두각시로 볼루아르테를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법안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를 천천히 해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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