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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남북 MZ세대 셀피, 조태열의 손 내밈...'폭염' 이기는 한줄기 바람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8. 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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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리우데자네이루 이후 8년 만에 파리 올림픽에 돌아온다. 남북 단일팀은 구성하지 않았다." 때로 타인의 시선이 우리의 옛모습을 기억한다. 선수 16명(여자 12명, 남자 4명)이 달랑 출전한 북한 대표단의 파리 올림픽 참가 소식을 전한 7월 22일 자 르몽드 기사였다.

30일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파리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이 끝난 뒤 남측 임종훈의 휴대폰 셀피에 신유빈과 북측 김금영-리정식이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국 선수들은 쑨잉사-왕추진. UPI통신을 비롯한 외신도 게재한 사진이다. 2024.7.30. 연합뉴스

남북을 보는 외부의 시선

불과 6년 전 남북이 평창 동계올림픽서 여자 아이스하키 한 팀을 이뤘음을 기억한 것. 기사 내용은 평이했지만 제목의 '남북 공동선수단'이 까마득해진 과거를 잠깐 돌아보게 했다. 스포츠 이벤트는 주로 핵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외신에서 소비되는 북한의 다른 얼굴을 볼 기회다.

미국 NBC방송은 지난 26일 올림픽 개막식에서 아나운서가 우리 대표단을 '북한'으로 잘못 호칭한 해프닝을 보고서야 북한 선수단의 존재가 떠오른 것같다. '북한이 2024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나?'라는 의문형 제목을 달았다. 북한은 2020 도쿄 하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불참했다. 코로나19 발생 뒤 국경을 폐쇄, 모든 국제대회를 보이코트했다.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세계 랭킹'이 빈칸인 까닭이다.

남북 관계로 돌아오면 스포츠와 정치는 늘 동전의 양면이다. 당의 지침에 묶인 북한 선수단은 국제무대에서 종종 어색한 장면을 내보인다. 작년 추석 무렵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임원들은 남측 기자들에게 "북한이 아니라,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부르라"고 사납게 다그쳤다. 당·국가 체제인 북한 주민의 대남 태도나 발언, 표정은 당의 방침에 따른 것. 항저우 여자 농구 남북 경기에서는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서 단일팀으로 뛰었던 남측 박지현은 북측 로숙영의 싸늘함에 섭섭함을 표했었다.

파리올림픽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이 열린 30일 프랑스 파리의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동메달을 딴 남측 임종훈이 은메달리스트인 북측 김금영과 악수를 하고 있다. 왼쪽은 신유빈, 오른쪽은 리정식. 2024.7.30. 연합뉴스

항저우, 선수들 표정마저 달라진 북한

여자복식 탁구 결승전에서 전지희-신유빈(금)에 패한 북측 차수영-박수경(은)은 시상대에서 시종 굳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 역도 76㎏급 시상식에서 북측 송국향(금)과 정춘희(은)가 기념사진 촬영이나 공개 회견 자리에서 동메달을 딴 남측 김수현을 대놓고 무시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놓은 김수현의 유쾌, 상쾌한 소감 덕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성사됐다. 북측 선수들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당이 뭐라 하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어떻게 참겠나.

항저우에서 내보인 헤어질 결심은 전조였다. 북한은 작년 말 당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결정으로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두 적대국가의 관계'라고 선언했다. 애당초 이번 파리 올림픽에서 항저우에서처럼 잠깐이나마 유쾌한 순간을 기대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30일 파리 사우스 아레나4에서 열린 탁구 혼합복식 시상식에서 반전이 있었다. 남북 경기는 성사되지 않았지만, 은메달을 차지한 북측 김금영-리정식과 동메달의 남측 신유빈-임종훈의 시상대 만남이 이뤄졌다. 경향신문 현장 보도에 따르면 사회자의 '북한(North Korea)' 호칭을 북측 임원이 나서 'DPR Korea'로 정정했지만, 날 선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김금영-리정식은 임종훈의 휴대폰 셀피 속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리정식은 덤덤한 표정이었고, 김금영은 활짝 웃었다. 항저우 시상식에서 보였던 무표정에서 벗어난 것이다. "경기도 박진감이 있었지만, 시상대 셀피는 파리 올림픽의 더 기억할 순간의 하나였다"고 전한 UPI 통신의 관점이 와 닿았다. '남·북 청년들 하나 둘 셋, 김치.' 1일 자 경향신문의 관련기사 제목도 눈에 띄었다.

2022 아시안게임 역도 여자 76㎏급 그룹A 경기에서 동메달을 딴 김수현 선수(오른쪽)가 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샤오산 스포츠 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북측 금·은메달리스트 송국향(가운데), 정춘희와 나란히 서 있다. 2023.10.5. 연합뉴스

파리, "하나 둘 셋, 김치"

7월 말, 남북이 만난 기억할 장면은 또 있었다.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만찬이 있었던 지난 26일 라오스 비엔티안의 국립 컨벤션센터에서다. 조태열 외교장관과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의 어색한 조우. 처음 조 장관을 알아본 리 대사가 그냥 지나쳤고, 나중에 리 대사의 존재를 확인한 조 장관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뒷짐 지고 선 리 대사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외면했고, 머쓱해진 조 장관은 리 대사의 팔을 살짝 잡은 뒤 자리로 돌아갔다. 국내 언론은 '리 장관의 외면'이라는 관점으로 주로 전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들어 보기 드문, 어쩌면 처음 보는 장면이었음을 간과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남북 외교관의 접촉은 유엔에서 노출한 견원지간의 꼴불견이 전부였다. 조 장관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먼저 손을 내밀었고, 비록 외면당했지만, 호의를 알렸다. 평가에 인색할 이유가 없는 현장 외교의 빛나는 장면이었다. 남북이 정말 오랜만에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지켜보던 세계는 리 대사의 외면보다 조 장관의 '손내밈'을 더 인상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대화를 하려 노력하고, 그게 안 되면 몸짓 하나로도 뜻을 전하는 행위, 이런걸 외교라고 하지 않나?

파리 올림픽에서 보인 북한의 행동은 지극히 사소한 변화다. 그러나 삐라와 쓰레기가 오가고, 군사분계선 확성기 방송이 시끄러운 한반도 분위기와 확실히 동떨어진 장면이었다. 파리 올림픽 남북 MZ세대의 첫 접촉에는 최소한 '분계선'이 없었다.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 만찬이 열린 26일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리영철 주라오스 북한 대사가 조태열 외교장관 뒤를 지나가며 흘깃 쳐다보고 있다. (왼쪽 사진) 뒤늦게 리 대사의 존재를 알게 된 조 장관이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리 대사는 뒷짐을 진 채 외면했다. 조 장관이 리 대사의 팔을 살짝 잡은 뒤 자리로 돌아가는 모습. 2024.7.26. [공동취재] 연합뉴스

적십자 제안에 진심 담아야 

비엔티안에서의 어색한 조우도 의미가 있었다. 북은 두 민족, 두 국가를 선언했지만 남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북은 앞으로도 거부하거나 외면할 것이다. "제발, 따로 살자"며 진저리를 칠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다가가 손을 내밀 일이다. "따로 살지 않겠다"라는 게 어찌됐건 정부 방침이고, 많은 국민이 동의하기 때문이다. 조 장관이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정부가 1일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심각한 수해 피해를 당한 북한에 지원 의사를 전달한 것 역시 반길 일이다. 다만, 조 장관의 제스처가 그랬듯이 진심이 실려야 메시지가 전달된다. 파리와 비엔티안의 조우는 결코 남북 간 현실정치를 바꾸지 못한다. 그러나 장마와 무더위, 전쟁 연습과 전쟁 준비에 지친 한반도 거주민에게 모처럼 상쾌한 바람을 선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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