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대 미국 대통령을 뽑는 선거 열기가 달궈지고 있다. 유난히 극적인 요소가 많은 대선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고령 리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선거판을 지배하던 시시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두 개의 큰 변곡점은 트럼프에 대한 암살 시도가 있었던 지난 7월 13일과 같은 달 21일 바이든의 전격적인 후보 사퇴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등장이다. 미국 주류 언론이 거의 예외없이 해리스에 대해 우호적인 보도를 쏟아내는 것도 이번 대선의 특징이다.
트럼프 피격은 오차 범위 내였지만 트럼프에 만성적으로 뒤졌던 바이든의 패색을 더 짙게 했다. 트럼프의 기적적인 생환과 피 흘리는 사진이 보도되면서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란 인식이 확산됐다. 공화당 전당대회(7.15~18)의 컨벤션 효과가 겹치면서 트럼프는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바이든과의 격차를 3%P 이상으로 벌렸다. 분위기를 다시 바꾼 건 같은 달 21일, 바이든의 전격 후보 사퇴였다. 장군에 멍군 격이었다. 해리스는 별다른 메시지도, 특징도 없는 유세를 벌였음에도 주류 언론의 지원사격 덕에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민주당 전당대회(8.18~22)의 컨벤션 효과도 상승효과를 도왔다.
29일 현재 각종 선거 여론조사를 집계하는 리얼클리어폴리틱스에 따르면 지지율에서 해리스가 트럼프를 앞선 건 8월 4일부터다. 8월 5~26일까지 실시된 8개 여론조사 평균 해리스는 48.3%의 지지율로 46.6%의 트럼프를 1.7%P 앞서고 있다.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여론조사 결과가 더 나오면 해리스가 격차를 더 벌릴 수 있다. 그런데 여론조사에서 해리스가 6.0%P 이상 우세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까?
7월이 트럼프의 달이었다면, 8월은 분명 해리스의 달이다. 미국 주류 언론의 편향 보도와 이를 그대로 번역해 전달하는 많은 한국 언론에는 조금씩 '해리스 대세론'의 분위기까지 등장하기 시작했다. 객관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 트럼프가 바이든과의 격차를 3%P 이상 벌리기 시작한 건 7월 4일(3.1%P)이었다. 이 추세는 바이든이 사퇴한 날까지 이어졌다. '트럼프 대세론'은 크게 강조되지 않았다. 작금의 판세만 놓고 미국 대선을 바라보면 허방을 짚기 십상이다. 자칫 미국 주류 언론과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점쳤던 2016년 미국 대선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더 깊이, 더 넓게 볼 필요가 있다.
대선 투표일은 11월 첫째 화요일이기에 선거 때마다 날짜가 달라지지만 큰 차이는 없다. 트럼프가 출마했던 지난 두 번의 대선 당시 8월 28일 자 후보별 지지율을 보면,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6.0%P 앞섰고 2020년엔 바이든이 6.9% 앞섰다. 그런데 투표 결과 클린턴은 패배했고, 바이든은 신승했다. 바이든의 후보 사퇴 이전 트럼프가 우세했던 격차나, 해리스의 앞선 격차나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2016년 대선과 2020년 대선의 승부가 갈린 곳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 주였던 중서부의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등 '푸른 장벽(Blue Wall)' 3개 주에서였다. 2016년엔 트럼프가 모두 승리했고, 2020년엔 바이든이 모두 승리했다. 해리스는 28일 현재 위스콘신(1.0%P)과 미시간(2.0%P)에서 앞서고 있고, 펜실베이니아에선 트럼프가 0.2%P 우세하다. 앞선 두 번의 대선과 마찬가지로 블루월 3개 주를 모두 차지하는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런데 현재 판세는 정확한 걸까?
2016년 8월 28일 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미시간(9.0%P), 위스콘신(11.5%P), 펜실베이니아(9.2%P)에서 클린턴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는데 정작 선거에선 3곳의 선거인단을 모두 잃었다. 미국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잘못된 예측에 대해 '속내를 숨긴 트럼프 지지자(Shy Trump)' 때문이었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2016년 사례를 보면 현재 해리스가 미시간, 위스콘신에서 벌린 1.0~2.0%P 격차도, 트럼프의 펜실베이니아 0.2%P 우세도 기실 무의미하다. 이번에도 숨은 트럼프 지지자는 존재한다. 많은 언론의 춤추는 판세 보도를 따라가는 게 시간 낭비인 까닭이다.
승자가 주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하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원칙이 지배하는 미국 대선은 합리적 예측이 어렵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공화당의 조지 부시에게 패한 건 플로리다주에서 벌어진 537표 차이 때문. 그나마 정확한 표차가 아니었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선거위원회 사무실에 난입한 폭도들 탓에 재검표 작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브룩스 형제의 폭동'이라고 불린 재검표 방해 책동의 기획자는 공화당 선거 책략가 로저 스톤이었다. 2020년 대선 직전 트럼프의 특별사면으로 다시 핵심 선거 참모를 맡았다. 1.6 의사당 폭동에 '스톤의 그림자'가 어른거린 이유다.
이번 대선의 진짜 드라마는 아직 벌어지지 않았다. 공화당 트럼프-JD 밴스 팀은 '대선에서 패배하면 결과에 승복할 것이냐'라는 언론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이 이기는 선거만 '공정선거'라고 맹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은 동남아 주요 국가들에 비해서도 국제뉴스 관심도가 낮은 한국 언론에서 예외다. 과할 정도로 많은 보도가 쏟아진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판세에 대한 관심보다 대선을 계기로 미국 사회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여전히 중산층 복원을 다짐하고 있을까? 미국민 4명 중 1명만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여길까? 아메리칸드림은 여전히 유효한가? 해리스의 낙태권 보호 및 여권 신장 목소리와 트럼프의 여성 혐오 성향은 어떤 결과를 낳을까?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등 많은 한국 기업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게 한 바이든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어떻게 될까? 미국 사회의 현주소는 무엇이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반도 평화와 어떤 상관 관계를 갖는가? <시민언론 민들레> 독자들에게 권하는 관심거리의 일단이다.
해리스는 미국 시각 29일 대선후보 자격으로 첫 인터뷰를 CNN과 한다. 한 달 넘도록 가는 곳마다 너털웃음을 지으며, '바이든의 약속'을 되풀이했다. 9월엔 해리스-트럼프의 첫 TV 토론이 벌어진다. 진정한 검증은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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