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이동을 계기로 한국의 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직접 지원을 기대해 왔던 미국과 나토의 오랜 희망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장기 소강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크라에 대해 재래식 무기의 '현지 생산, 현지 사용'을 추구하는 구도가 한국의 자발적 참여로 완성되기를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나토 앞당겨 퍼붓는 "갈채"
직접적으로 이를 드러낸 것은 미국이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에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공격용 무기 제공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말한 데 대해 "물론 우리는 우크라에 대한 어떤 나라의 지원이건 환영한다"라고 반겼다. "자국의 안보지원(결정)은 한국에 맡기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제임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23일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을 공식 확인하기 전 한국의 공격무기 제공을 앞당겨 환영한 셈이다.
지난 21일 마르크 뤼터 신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도 윤석열 대통령과 통화에서 "북한군 파병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우크라-나토 간 방산 협력과 안보 대화를 강화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뤼터 총장이 말한 '방산 협력'은 바로 155㎜ 포탄을 비롯해 전장에서 수요가 높은 재래식무기의 직접 지원을 말한다. 우크라전 개전 이후 미국과 나토가 줄곧 보여 온 태도의 연장이다. 2023년 1월 29~30일 방한했던 당시 옌스 스톨덴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은 "한국이 지원을 더 했으면(step up) 한다"라면서도 "군사적 지원이라는 구체적 이슈는 결국 한국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었다.
2차 대전 당시를 방불케 하는 포격전과 참호전이 벌어지는 우크라 전선에서는 포탄의 수급이 단기적 승패를 좌우한다. 한국은 그동안 포탄을 미국과 나토 회원국에 수출하고, 해당국이 우크라에 자국 비축용 포탄을 제공하게 하는 방식으로 간접 지원을 해왔다. 폴란드는 한국산 다연장로켓 천무와 K2 전차, K9 자주포 등을 사들인 뒤 자국의 낡은 무기체계를 우크라에 보냈다. 포탄이나 무기의 최종 사용자(end-user)를 해당국으로 제한하는 안전장치가 달린 계약이었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직접 지원한다면, 우회 지원으로 인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크라 전쟁에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 공교롭게 한국의 최대 방산 수출국인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국빈 방한 중이다.
남북한과 우크라 전쟁
미국과 나토는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 이후 자국의 탄약과 포탄, 대전차 미사일 등의 생산량을 늘려 왔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고부가가치 첨단무기 생산으로 전환한 상태였기 때문에 재래식 무기 공급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미국은 펜실베이니아 스크랜턴의 포탄 생산라인을 늘렸지만, 막대한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왔다.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방산업체들은 그렇다고 재래식 무기 생산 설비를 대폭 늘리지도 못하는 처지다. 우크라 전쟁이 끝나면 다시 쓸모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까지 집속탄 공급에 이어 열화우라늄탄까지 제공하고 있겠나.
미국과 유럽을 합한 것보다 많은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한국산 포탄에 눈독 들일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포탄의 국제정치학에는 남북한과 미국, 러시아가 모두 포함된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전쟁 첫해인 2022년 11월 2일, "북한이 상당량의 포탄을 러시아에 제공했다는 정보가 있다"라면서 "중동 또는 북아프리카에 보내는 방식으로 목적지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작년 9월부터 북한이 러시아에 122㎜ 포탄과 미사일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무관치 않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한국 국가정보원은 러시아 함정의 북한 항구 기항, 적재된 컨테이너 등의 위성사진을 증거로 내놓으며 북-러 간 포탄 거래를 주장해 왔다. 펜타곤은 같은 해 9월 5일 북한의 포탄 공급을 주장, 여론을 조성해 놓은 뒤 바로 다음 날 우크라에 10억 달러 상당의 열화우라늄탄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잠깐만 뜯어보면 속이 빤히 보이는 '언론 플레이'였다.
나토가 말하는 방산 협력의 정체는?
전쟁이 장기화하자 미국과 나토는 우크라 내에 재래식 무기 생산공장을 건설해 자체 수급토록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우크라에 일자리를 공급, 경제회복에 도움을 주는 동시에 서방의 골칫거리였던 재래식 무기, 포탄의 수급 문제를 해결하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의 '버티며 건설하기(hold & build)' 전략에도 부합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작년 9월 워싱턴 회담에서 "우크라와 모든 파트너국을 강화할 새로운 방위산업 생태계를 만들 것"에 합의했다.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도 우크라를 '유럽의 무기고'로 만드는 것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우크라에 직접 재래식 무기 생산라인을 깐다면 '횡재'가 아닐 수 없다. 바로 뤼터 총장이 윤 대통령에게 전달한 한국-우크라-나토의 방위산업 3각 협력의 요체다.
미국과 나토가 여전히 러시아 이동 북한 특수부대의 우크라 전쟁 참전 의도를 확인도 하기 전에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된 건 전적으로 한국 정부의 적극적 의지 덕분이다. 한국이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고, 방위산업 3각 협력을 한다면, 북한군의 참전과 무관하게 우크라 무기 공급의 고민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으로선 "방산 수출을 늘렸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 분명한 사안. 그러나 우크라 살상무기 공급은 타산으로만 접근할 사안이 절대 아니다.
미국과 나토에 행복은 우리에게 단순히 불행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우크라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로 날아오는 파국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한국산 포탄의 미국 수출이 확인된 2022년 10월 27일 모스크바 발다이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이 우크라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하면, 한러 관계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작년 7월 우크라 방문 두 달 뒤 북러 보스토치니 정상회담이 열렸다. 무기 수출 및 방산 협력으로 푼돈을 챙길는지 모르지만, 섶을 지고 불길에 뛰어드는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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