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특수부대의 러시아 이동이 어떤 목적에서 이뤄졌는지 머지 않아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온갖 먼지가 가라앉고 실체가 드러날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말이다.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이 북러 신조약안을 예정보다 빨리 비준하고, 러시아 정부는 조약안 이행방안을 놓고 북한과 긴밀히 논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신속한 비준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은 24일 북한과의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안을 비준했다. 재적 의원 397명이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정부가 지난 14일 비준안을 제출했을 때만 해도 11월 중 비준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상정 열흘 만에 신속히 비준했다. 레오니트 슬루츠키 두마 국제문제위원장은 지난 15일 비준 절차가 11월 초, 중순쯤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이는 북한군 활용과 관련한 모종의 결정이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조약안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서명 뒤 발효된다.
조약 제4조는 유사시 상호 군사지원을 규정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브릭스(BRICS)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북한 지도자가 조약 제4조를 진지하게 여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다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우리가 결정한다"라고 말했다. 북한군이 러시아 군기지에 배치된 목적과 향후 활동 방안에 대해 북러 간 논의가 완료되지 않았음을 시사한 대목이다. 푸틴은 "우리는 우선 제4조 이행과 관련해 (북한과) 회담을 열 필요가 있다"라면서 "북한 친구들과 함께 제4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갈지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위성 사진은 북한군이 러시아에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군은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들의 이동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대대적인 확전이 아니냐'는 미국 NBC뉴스 기자의 질문에 "이미지(사진)가 있다면 무언가 말해준다(If images exist, they indicate something)"라고 말하면서도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에 대해서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우크라전 개입한 건 서방"
그러나 "우크라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러시아가 아니라 주로 미국이 재정적으로 후원한 2014년 쿠데타(메이단 혁명)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또 "(전쟁을) 확전 방향으로 몇 단계 진전시킨 것도 서방 국가들"이라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대가 직접 개입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푸틴은 흑해 무인선박 배치와 군사고문단의 존재, 미국제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 영국제 스톰 섀도 등 서방 지원 무기를 나토의 직접 개입 증거로 제시했다.
전황과 관련, 우크라군이 진출한 쿠르스크 지방을 포함해 러시아군이 전선의 모든 구간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쿠르스크의 우크라군 2000명은 현재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있다면서 러시아군의 제거 작전이 이미 시작됐다고 전했다. 일방이 침략당하면 군사 지원토록 명시한 북러 조약 4조에 따라 북한군이 전선에 배치된다면, 쿠르스크가 유력한 곳으로 지목된다. 우크라 언론은 이날 북한군 선발대가 쿠르스크 전선에 배치됐다고 보도했지만,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부대변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난 18일 밝힌 것처럼 북한군의 배치 목적에 대해서는 여전히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관심은 푸틴이 밝힌 대로 러시아가 북러 조약 제4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집중된다. 조약은 군사지원의 결정 전 유엔헌장 제51조(자위권)와 러시아 국내법, 북한 국내법 등 삼중 검토를 거치게 돼 있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6월 조약 체결 시점부터 일관되게 북러 군사협력이 한반도와 동아시아 지역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 대사는 21일 "러·북 협력이 대한민국의 안보 이익에 반하지 않으며, 국제법의 틀 안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입장을 우리 외교부에 전달했다. 북한군 참전이 우리 안보와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다는 말은 틀리지 않다.
북한군이라는 '카드'
윤석열 정부는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 자체가 "한반도와 국제사회의 중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쟁의 당사자인 우크라와 미국, 나토에 악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반도 안보에 악재라는 주장은 확대 해석이다.
러시아가 '북한군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러시아가 일관되게 북러 군사협력을 우크라 전쟁에 대한 서방의 결정에 연동하고 있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푸틴은 브릭스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에 장거리 미사일을 제공한 점을 주목하고 있음을 밝혔다. 푸틴은 지난 6월 19일 북러 정상회담 및 조약 체결 언론성명에서도 미국과 나토 회원국들이 장거리 고정밀 무기와 F-16 전투기 및 기술 집중적인 무기를 제공, 러시아 영토를 겨냥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러시아는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과 군사적, 기술적 협력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푸틴이 우크라전을 읽는 관점에서 보면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 역시 상황 악화에 대비한 일종의 카드로 활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군의 참전은 미국이 우크라에 장거리 무기를 동원한 러시아 공격을 허용하는 순간,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조기 종전을 주장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월 5일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패권국의 의사결정 방식
미국과 러시아 등 패권국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 가급적 많은 카드를 준비하는 특성이 있다. 상황 전개와 상대편의 움직임에 따라 내놓는 카드를 달리한다. 패권국 경험이 없는 동아시아 분단국처럼 댓바람에 화들짝 놀란 듯 '공격무기 우크라 제공'과 같이 아직 결정하지도 않은 카드를 섣불리 내보이지 않는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장거리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데다가 미 대선이 코 앞인 상황에서 "우리가 알아서 한다'는 러시아가 결정을 미룰 수도 있다. 무엇보다 1만여 명의 북한군의 참전이 전세를 당장 획기적으로 바꿀 변수도 아니다.
북한으로선 특수부대 병사 수천 명을 러시아에 보낸 것만으로 외화 획득의 기회가 실현됐다. 러시아가 참전시킬지 계속 러시아 군기지에 두면서 카드로만 활용할지, 지켜볼 일이다. 미국과 나토는 한국의 살상무기 우크라 지원과 한국 무기 공장의 우크라 이전 등 방산협력을 통해 이득을 챙길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한 대한민국만 유독 아직 얻을 게 보이지 않는다. 잃을 것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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