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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서 끊어라" 윤곽 드러나는 검찰-군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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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 아니다, 명령이었다, 그런데 송구한 것 같다."

'친위 쿠데타'에 연루된 군 지휘관들의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답변은 위 네 가지 틀 안에 머문다. 개별 행동을 하는 것 같지만, 미리 시나리오를 짠 게 아닌가 의혹이 들 정도다. 혼란스러운 증언이 난무하는 가운데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서 그 일단이 드러났다.

29일 오전 경기도 광주시 육군 특수전학교에서 열린 '특전부사관 257기 임관식'에서 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 축사하고 있다. 2024.11.29. 연합뉴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이하 특전사령관)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대통령 윤석열에게 두 번 전화를 받았음을 시인했다. 반란의 출발점이 대통령임을 거듭 확인한 것. 그런데 사건을 자청해 수사하고 있는 검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출발점에 관심이 없었다. 특전사령관은 조국 조국혁신당 의원이 "어제 검찰 특수본 소환조사에서 수사 담당 검사가 내란 음모와 실행 등이 김용현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처럼 물은 게 맞는가"라고 묻자 "그렇다"라고 답했다.

조 의원은 특수본의 질문이 전 국방장관 김용현(이하 김용현)을 중심으로 하고, 대통령을 부차적인 것처럼 말했음이 확인됐다면서 "법사위를 통해 분명히 밝힐 것"을 다짐했다. 특전사령관은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는 지시를 누가 했느냐'는 질문(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에도 "김용현 장관의 지시였다"고 답했다.

3개 기관이 경쟁적으로 반란 수사에 나서면서도 정작 대통령 신병을 확보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김용현이 연일 거론된다. 국회에 출동했던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 단장(대령)도 김용현을 지목했다. 그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앞 기자회견에서 "(특전사) 707 부대원들은 전 김용현 국방장관에게 이용당한 가장 안타까운 피해자다. 부대원들은 죄가 없다"고 강조했다. 특전사령관에게 받은 '국회의원 150명' 저지 명령도 "김용현 전 장관이 지시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평양 무인기 침투 역시 '김용현 작품'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제707특수임무단장 김현태 대령이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707특수임무단은 지난 3일 밤 비상계엄 사태 당시 국회 진입을 위해 투입됐다. 2024.12.9. 연합뉴스

구속 여부가 이르면 10일 오후 결정되는 김용현도 총대를 메겠다는 자세를 보인다. 검찰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도 포기하고 "모든 책임은 오직 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대륙아주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다. 영장은 검찰이 9일 청구한 것.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10일 별도로 김용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런데 검찰은 왜 수사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 할까. 오동운 공수처 수사처장은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 "(직권남용 범죄가 검찰의)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라면서 "나중에 굉장히 큰 적법절차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사태의 특징은 친위 쿠데타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사들이 저마다 입장문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초유의 현상이다. 입장문은 대개 "내 탓이오"로 끝을 맺으며 짐짓 부하들을 걱정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에 대해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함구한다. 현역 군인들은 나중에 정상을 참작할지언정 군검찰에 넘겨 군사반란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는 게 상식적이다.

김용현 국방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4.9.2. 연합뉴스

"TV 보도를 보고 계엄 사실을 알았다"고 주장하는 전 방첩사령관 여인형도 9일 입장문을 내놨다. "몰랐다, 부하들은 죄 없다, 죄송하다"라는 구조다. 각각의 입장문과 국회 출석 발언을 종합해 보면 하나의 흐름이 읽힌다. 바로 '김용현 집중'이다.

특전사령관과 이진우 수방사령관 등의 증언에서 대통령이 직접 몇 차례 전화를 걸어 병력 출동 상황을 점검하고, 선관위 및 국회 장악 의도가 백일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10일 현재 초점은 김용현을 떠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두 갈래로 보면, 일단 군 지휘부 개개인은 "김용현에 이용당했다"는 논리로 자신들의 반란 가담 혐의를 줄이려는 의도가 있을 법하다. 더 큰 부분은 대통령 윤석열이다. 내란이 김용현에서 비롯됐음을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대통령의 가담 정도를 줄이려는 의도가 보인다. 많이 나가봐야 '직권남용'에 그친다고 우길 가능성도 있다. 검찰의 역할이 시나리오 전개상 핵심이다.

검찰 수사가 충실하게 이뤄진다고 해도, 오동운 처장이 지적한 대로 굉장히 큰 적법절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직권남용 혐의' 수사권이 없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획득한 증거를 법원에 넘기더라도 증거능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반란 혐의 자체가 검찰의 수사대상이 아닌 만큼 김용현 변호인 측이 문제 제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쩌면 '절차 문제'의 발생이 바로 검찰이 수사를 도맡으려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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