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7-04-23|04면 |45판 |종합 |컬럼,논단 |1106자 |
슬픔도 힘이 되고, 악몽으로 돌리고 싶은 참극에도 교훈은 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로 기록된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우리에게 두 가지 생소한 풍경을 제공했다. 우선 32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는데도 아직 책임지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사과하는 사람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책임지라는, 사과하라는 '고함'이 없다. 대학 및 경찰의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은 제기됐다. 하지만 "책임자는 물러나라"는 요구가 아직은 없다. 지금은 정확한 수사와 상처를 치유하는 게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대형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희생양'을 찾아 눈을 번뜩여온 한국사회에는 낯선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수사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사과하라" "책임자 인책하라" "국정조사 실시하라"는 식의 정치적 공세가 봇물치는 데 익숙한 우리로서는 낯설기까지 하다. 미국은 먼저 시스템을 문제삼았다. 인책론이 아닌, '시스템 책임론'이다. 1999년 콜롬바인 사건 이후 보안이 강화된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슨했던 대학 내 치안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티모시 케인 버지니아 주지사가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발표했지만 시스템 점검 성격이 짙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캠퍼스는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조국과 민족을 늘 생각하고 있을 유명 정치인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온.오프라인의 모든 매체들이 1주일째 초점을 맞추고 있는 사건이었다. 정치인들이 화면에, 지면에 얼굴을 내밀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부지런히 표밭을 갈고 있는 대권주자들 가운데 누구도 참사현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미 정치인들이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미 수정헌법 2장에 규정된 '총기규제의 자유'를 둘러싼 토론이었다. 미국사회가 항상 성숙한 대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콜롬바인 참사 이후 교내외 총기난사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이 요원하다는 한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냄비처럼 끓다가 쉽게 망각하는 우리에 비해 그들의 대응이 보다 '내구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어처구니 없는 참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난다. 그 교훈을 어떻게 소화하고 간직하느냐는 것은 단순한 문화 차이가 아니다. 그 사회의 역량이 달린 문제다. 김진호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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