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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좋은 미국, 나쁜 미국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

by gino's 2012. 3. 29.

·자신의 세금이 타인에 쓰이는 것 불원
·정부에 권리를 맡기지 않으려는 정서탓
·“이제 자유의 나무에 물을 줄 때가 됐다.”

지난 13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에서 의료보험 개혁 타운홀 미팅을 갖는 동안 9㎜ 권총을 찬 채 반대시위에 나선 한 주민의 피켓에는 이런 글이 씌어 있었다. 이뿐이 아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초상화에 아돌프 히틀러의 콧수염을 붙인 사진을 들고 나온 흑인이 있는가 하면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사례도 심심치 않다. 미국인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의료보험 개혁을 싫어할까.

비교적 소통문화가 자리잡은 미국 곳곳에서 유달리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싸고 험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다. 미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인 타운홀 미팅장은 난장판으로 얼룩지고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타운홀 미팅을 취소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의료보험업계의 반대 로비나 의료보험 재원 마련에 따른 세금 부담이 반발의 이유인 것 같다. 그리고 직접적으로는 백악관과 상·하원을 모두 민주당에 내준 공화당의 정치 공세가 먹히고 있다는 얘기도 가능하다. 하지만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대결 또는 이해 당사자들의 충돌로만 보기에는 어딘가 설명이 부족하다.

평범한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 이토록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열쇳말을 굳이 꼽으면 그것은 ‘세금’과 ‘자유’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열쇳말은 독립전쟁 이후 미국인들의 유전자에 깊이 새겨진 정서들이기도 하다.

정부와 관료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맡기지 않겠다는 전통적인 정서와 자신이 낸 세금이 가족이나 이웃이 아닌 곳에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 미국식 사고 방식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포츠머스 행사장에서 권총을 찼던 윌리엄 코스트릭은 ‘조세 개혁을 위한 보수적 미국인들’이라는 단체 소속이었다. 그는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자유의 나무는 종종 폭압자와 애국자의 피로 생기를 얻어야 한다”면서 의료보험 개혁을 폭압으로, 반대를 애국으로 정의했다. 뉴햄프셔주는 총기를 공개적으로 소지한 것을 처벌하지 않는다.

실제 이런 주장은 지금까지 상당히 먹혀들었다. 1990년대 공화당이 빌 클린턴 행정부의 의료보험 개혁을 좌초시킬 때도 바로 이 정서에 호소했다.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16일자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고문에서 오바마의 의보개혁을 ‘배급제’라고 규정, 관료주의와 복잡한 규정으로 의료보험에 관한한 개인의 선택권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독신 남성일 경우에도 다른 임산부와 아이들에게 제공될 의료서비스를 위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설명을 곁들이면서 “정부를 어떻게 믿느냐”고 말했다. ‘세금’과 ‘자유’의 코드가 이번에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벌써부터 핵심 요소의 하나인 공공보험의 철회 가능성을 시사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개혁의 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 여전히 위협적인 정서몰이가 아닐 수 없다. 보수 우파를 대변하는 폭스뉴스는 16일 타운홀 미팅에서 반대시위가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며 반색했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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