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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인사이드 월드

9.11테러 1주년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다?

by gino's 2012. 2. 25.
<9.11테러 그후 1년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경향신문]|2002-09-14|07면 |45판 |국제·외신

■"우리는 모두 미국인서 反美주의자로 변했다"
9.11테러는 지난해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 두 동이 무너진 짧은 시간만큼 세계는 순식간에 테러를 규탄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미국의 우방국가들만 슬픔과 분노를 나눈 게 아니었다. 잠재적 경쟁국가로 지목됐던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쿠바와 북한까지 테러 비난 성명을 발표했다.

이슬람근본주의 테러리스트들이 죽음으로써 던진 메시지가 아무리 처연했다고 해도 그것이 초래한 3,053명의 무고한 희생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덧칠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병상에 누워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까지 링거를 꼽은 채 이슬람 형제들의 테러행위를 비난했다. 지구촌 차원의 거대한 연대가 한목에 성립됐던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행태를 냉소적으로 비난해온 프랑스 르몽드의 발행인 장 마리 콜롱바니는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는 칼럼을 통해 엄청난 재난을 겪은 미국과 미국인을 위무했다.

그로부터 1년. 세계는 어떻게 변했는가. 변화의 단초는 사건발생 24시간 동안 마련된 듯하다. 테러 당일 플로리다주에 있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곧바로 백악관에 복귀하지 못했던 부시 대통령은 하루 뒤 '미국은 전쟁중'이라며 결연한 응징을 다짐했다. 이후 테러의 온상으로 지목된 아프간은 철저히 유린됐고, 탈레반이 구현하려던 '알라의 나라'는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전쟁'의 음산한 울림은 과녁만 이라크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세계는 우선 아군과 적군으로 나뉘더니,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된 데 이어 결국 '선'과 '악'으로 양분됐다. 테러척결이라는 절대명제 앞에서 국제법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화합'과 '인권' 등 인류가 추구해오던 이상은 빛이 바랬다. 그리하여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 갇힌 39개국 600여명의 탈레반 포로들은 원숭이와 같은 몰골로 수감생활을 시작했고, 미국내 외국유학생들은 사찰대상이 됐다.

그렇다고 미국민들이 안전을 보장받게 된 것도 아니다. 9.11테러 한달 전 테러 조짐을 간과했던 연방수사국(FBI)은 과오를 만회라도 하듯 작은 테러 단서에도 비상경계령을 발동했다. 불안은 일상화됐다. 신설될 미 국토안보부에서 일할 17만명의 노동자들은 단체협약권을 빼앗기게 된다. 테러는 미국의 안보우선순위만 바꾼 게 아니다. 사람답게 살 우선권마저 뒤로 밀쳐냈다.

국제적으로 미국은 상반된 행보를 보였다. 교토기후협약과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지구적 현안에서 스스로 예외가 되면서도 테러와의 전쟁에는 예외없는 동참을 강요했다. 그사이 미국의 내년 국방예산은 20년 만에 최대규모(3천5백54억달러)로 불어났다.

9.11테러를 미국을 일깨운 '자명종'으로 해석한 미국의 판단이 틀린 건 아니었다. 미국은 탈냉전 이후 반복됐던 이슬람근본주의자들의 잦은 대미 성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마침내 깨달았다. 문제는 대응방법에 있었다. 이슬람권의 민심을 돌려놓은 중동정책과 아랍 봉건왕정지지, 항구적인 군사개입 등 증오의 씨를 제거하기보다는 군사작전만으로 테러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정보화혁명 덕에 테러조직도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으며, 포장테이프를 자르는 커터만으로도 여객기를 납치할 수 있다는 9.11테러의 교훈은 잊혀진 지 오래다.

세계는 이제 '성난 거인'의 다음 행보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이라크가 '대량살상 무기를 보유할 가능성이 있다'는 혐의만으로 침공을 서두르고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저지했던 1991년 걸프전과는 차원이 다른 '예방전쟁'이다. 미국내는 물론 국제사회의 여론은 이미 갈라지기 시작했다. 테러 직후 미국을 중심으로 뭉쳤던 글로벌 연대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국인'이라는 칼럼을 집필했던 콜롱바니는 급기야 지난 9월11일자 신문에 다시 펜을 들었다. '곤경에 처한 미국' 제하의 칼럼에서 그는 "지난 1년의 시간은 세계로 하여금 '우리는 모두 반미주의자'라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이 메가폰을 잡은 '9.11테러 1년 드라마'의 요체다.

김진호 기자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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