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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한·미관계에 대한 ‘환상’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17.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한·미관계가 잘될 것이라는 ‘유포리아(Euphoria)’가 부쩍 확산되는 분위기다. 미 상·하원이 최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데서 비롯된 듯하다. 지난 14일에는 대외무기판매(FMS) 프로그램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는 물론 일본·호주·뉴질랜드에 비해 한 단계 낮은 한국의 지위를 한 단계 높이자는 ‘한·미 군사협력 강화 법안’이 제출됐다.

미 의회 결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의사당 내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점에서는 참고할 만하다. 문제는 본질은 제자리에 두고 분위기만 띄우는 작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이(李)비어천가’를 읊조리던 가락으로 한국 내 정권교체에 맞춰 편리하게 해석하는 단견들이다. 미 의회가 한반도 관련 결의안을 부쩍 많이 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주미 대사관이 공식적으로 로비스트를 임명, 대 의회 접촉을 강화해온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다. 한·미동맹을 긍정평가했던 지난해 6월 하원 결의안과 같은해 12월 제물포조약 체결 125주년을 계기로 상원에서 채택한 결의안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 모든 결과물로 최근 나오는 결의안들을 이명박정부의 출범을 환영하는 성격이라는 해석은 나쁘게 보면 왜곡이며, 좋게 봐도 과도한 해석이다.

지난 14일 하원에 제출된 ‘한·미 군사협력 강화 법안’ 역시 마찬가지다. 참여정부가 2년여 동안 공을 들여온 사안이다. 작년 7월23일 상원에 제출돼 계류중인 법안과 명칭은 물론 내용까지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실제 입법화돼 미국산 무기 수입에 막대한 혈세를 쏟아부으면서도 ‘이등국가’ 취급을 받아온 관행을 끝내는 것이지 같은 법안이 다시 제출됐다고 희희낙락하는 건 아닐 게다.

이 모든 것을 이명박정권의 등장과 맞물려 해석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우리가 실제로 얻을 것이 무엇일까. 아프간·이라크에 파병을 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전에 스크린 쿼터와 쇠고기 문호를 개방해주었던 ‘과공(過恭)’에도 불구하고 끝내 제값을 받지 못한 참여정부의 대미정책이 잘됐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혹여 대미외교에도 ‘잃어버린 10년’을 운운하면서 섣불리 대수술을 벌일 요량이라면 곤란하다.

‘좋았던 10년 전’으로 시계바늘을 돌리겠다는 사람들을 말릴 필요는 없을 성싶다. 한국도, 미국도, 세계도 바뀌었다고 아무리 말해봐야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니까. 또 어차피 곧 미국에 와서 미국 역시 ‘21세기형 새로운 동맹’을 원한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주억거리게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이런 사람들일수록 체질적으로 ‘종미(從美) 성향’이 다분하다는 점은 되레 다행이다.

유포리아의 사전적 정의는 ‘마약중독 또는 병적인 쾌감’을 말한다. 저마다 ‘한 자리’씩 맡은 차기 정부 주변사람들이 말로만 떠들었던 한·미관계 개선을 실적으로 보여줄 날이 다가온다. 외교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는다. 누적된 결과물로서 성과가 나오는 것이다. 누군가 펌프질을 해서 ‘물’ 좀 나왔다고 한·미관계가 갑자기 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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