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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쿠바와 미국과 북한

by 비회원 2008. 3. 9.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똑같이 미국의 경제제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쿠바는 북한과 다른 세상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반세기를 접고,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 시대를 여는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지난달 말 찾은 아바나는 절반쯤 열린 사회였다. 호세 마르티 공항에서 매일 외국으로 나가는 비행기가 40여편에 달했다. 평양에서는 1주일에 중국 베이징 또는 선양 등지를 오가는 국제선 정기항공이 서너차례 운항된다. 평균 월급 10~15달러로 궁핍한 생활을 한다지만 노동자 평균 임금이 2달러 안팎인 북한에 비하면 돈이 도는 사회다. 극렬한 반 카스트로 성향인 마이애미의 쿠바계 미국인들도 3년에 한번으로 제한됐지만 고향방문을 할 수 있다. 마이애미와 아바나 사이에 직항이 운항되는 이유다. 매년 수십억달러를 흘리고 가는 외국인 관광객들 덕분에 쿠바인들은 세상 돌아가는 뉴스를 접한다. 정권은 반미를 외치지만, 거리엔 할리우드 영화가 범람한다. 다소 줄었다지만 반미구호 입간판이 여전히 남아 있는 평양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풍경들이다.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정부가 매월 10만배럴의 석유를 제공해주는 덕분에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구역별로 돌아가며 하루 1~2시간 정전을 하던 전력 사정도 좋아졌다.

미국에 대한 쿠바 정부의 자세에도 여유와 풍자가 엿보였다. 아바나의 미국 이익대표부 건물 앞에 설치된 100여개의 깃발꽂이대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미국 측이 건물 중간쯤에 문자뉴스 전광판으로 세계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자 쿠바 정부가 눈막이용으로 설치한 것이다. 깃대에는 반 카스트로 인사들의 테러공격으로 숨진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한 검은 조기들이 꽂혀 있다. 비슷한 상황에서 죽기살기 식으로 대미항전을 외치기 십상인 북한과 달리 점잖게 ‘네 눈의 들보’를 대비시켜 놓은 것이다.

쿠바가 1959년 혁명 이후 처음으로 정권교체를 할 즈음, 평양에서는 뉴욕 필하모닉이 미국 국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미·쿠바 관계와 북·미관계가 개선될 조짐이 비슷한 시기에 고개를 들고 있다. 미 하원의원 100명이 제재 철회를 요구하는가 하면, 쿠바는 지난주 유엔이 권한 시민·정치적 인권 의정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쿠바보다는 북한이 먼저 미국과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96년 쿠바 제재를 외국기업에까지 확대한 헬름즈·버튼 법안은 관계 정상화의 전제조건으로 수많은 인명을 희생시킨 반체제 테러리스트를 비롯한 ‘모든 정치범’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피델과 라울의 이름을 법안에 명시하고 이들이 집권하는 한 관계 개선 가능성을 배제했다. 카스트로 형제가 친미주의자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조건들이다. 반면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및 적성국 교역금지 조항은 사실상 행정부 결정으로 바꿀 수 있는 문제다. 대 쿠바관계 개선을 한사코 거부하는 조지 부시 행정부도 임기 내 최우선 과제로 북핵 해결을 꼽고 있다. 문제는 서울이다. 한·미동맹을 중요시한다는 거듭된 주장 한편으로 변화에 대비할 어떤 청사진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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