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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다시 긴 여정

칼럼/워싱턴리포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4. 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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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한나라당의 ‘대북 퍼주기’ 비난이 극에 달했던 지난 정권 때의 일이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대면했던 한 인사에게 인상을 물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 등의 평처럼 “만나보니 똑똑한 사람이었다”는 고만고만한 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순간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고 답했다. “그 한사람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왜 그후로도 오랫동안, 사명감을 갖고 ‘퍼주기’를 계속했을까.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지난 10년간 남북관계가 ‘친북좌파’에 의해 왜곡됐다. 이들이 간과하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북한 정권이 정상 정권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상이라면 국민 200만명을 굶겨 죽였겠는가. 그래도 북한 정권은 건재하며, 그런 정권을 상대로 핵을 포기하라며 온갖 선물을 안겨주려는 게 6자회담이라는 평화적·외교적 접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며칠 전 뉴욕에서 “(북한의) 위협적인 발언 때문에 도와주거나 협상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말에 따르면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은 위협에 굴복한 사람이다.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에 놀라 46억달러 상당의 경수로를 퍼주기로 도장을 찍었다. 조지 부시 현 행정부는 더 심했다. “대화는 해도 협상은 하지 않겠다”더니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뒤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오죽하면 이태식 주미대사가 이를 두고 “모순적이고 독설적”이라고 꼬집었겠는가. 법을 우회해서까지 방코델타아시아(BDA) 불법자금을 돌려주기도 했다. 최근엔 ‘완전하고 정확한 핵신고’를 수없이 강조하더니 슬그머니 북핵신고의 ‘골문’을 넓혔다.

지난해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빗대 “임기말에 서둘러 합의서를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 이 대통령의 말 역시 화자(話者)에게 되돌아가는 부메랑이다. 부시 행정부는 임기 막판에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이 대통령 본인은 어떤가. 부시 대통령이 답방하게 될 오는 7월 한·미동맹의 미래비전을 담은 성명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레임덕이 시작돼 절뚝거리는 오리 신세가 될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말이다.

백지장도 맞들려면 우선 마주 서야 한다. 남북 정상 간 합의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남북관계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만나기는커녕, 휴전선 이북의 모든 정부 당국자들이 추방당하는 처지다. “연락사무소 제안을 거부하면 대화가 끊어진다”고 이 대통령이 경고하지 않더라도 북한은 이미 대남 대화채널을 끊었다. ‘대북 퍼주기’도 ‘대미 퍼주기’도 한반도 안보의 일방적인 보증수표는 아니다.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이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분단의 숙명이다. 남북관계가 17년 전의 출발점(남북기본합의서)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미관계가 좋아진다는 가정은 또 하나의 긴 여행을 예고한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결코 정상 정권이 아닌 북한 체제 아래 놓인 주민들은 다시 한번 인도적인 재앙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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