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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세탁

칼럼/여적

by gino's 2012. 7. 12.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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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논설위원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이 현재의 불확실한 삶을 일거에 바꾸려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엊그제 시신을 구하기 위해 사람을 죽인 혐의로 40대 무속인이 경찰에 체포됐다. 무리한 원룸주택 건설 탓에 사채업자의 빚독촉을 받다가 노숙자에게 다량의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뒤 자신의 사체인 양 위장해 보험금을 타내려던 혐의다. 가짜 검안서를 받기 위한 도구로 타인의 사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시신세탁’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보험금을 노린 살인사건의 희생자가 대개 가족이나 지인인 것과 달리 자신의 사망보험금을 타려는 살인은 무연고의 타인을 대상으로 삼는다. 타살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확정판결이 안나왔지만 2010년 부산에서 발생했던 보험살인 사건도 비슷하다. 용의자는 20대 노숙인을 쉼터에서 꼬여낸 뒤 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한 뒤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위장해 보험금을 타려 했다. 이 사건의 용의자는 버젓이 보험회사로 직접 찾아가 자신의사망보험금을 타내려고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향신문DB


보험금 수령을 노린 상해·살인사건이 신문지상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가족들에게 보험금을 남기기 위해 자살하는 생계형에서 타인을 살해하는 범죄형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자신을 없애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신세탁은 자신의 존재를 서류상에서 지워버린다. 영화 <화차>의 주인공처럼 다른 이름, 다른 사람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한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영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스스로 죽어야 산다는 생각을 갖게 한 것일까.


막다른 골목에 몰린 한 인간이 타인을 해하는 방식으로 생존 또는 더 나은 삶을 모색했다면 경악과 우려를 금치 못하게 된다. 하지만 생소한 범죄가 빈발한다면 그 사회적 배경을 들춰볼 필요가 있다. 살인 또는 상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사회가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개인 범죄인 동시에 사회 범죄이기 때문이다. 범죄를 통해 드러난 사회의 맨얼굴을 직시해야 한다. 두 사건 모두 무연고 노숙자들이 희생양이 됐다는 점에서 경종을 울린다. 인간은 살아서건, 죽어서건 존엄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돈세탁이나 학력세탁도 사회악이지만, 시신세탁은 단순한 범죄 이상의 충격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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