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기상자

칼럼/여적

by gino's 2012. 6. 15. 22:00

본문

김진호 논설위원

 

 

 

“눈을 떠보니 딱 나 하나 눕기에 적당한 상자 안이었다. 엄마가 이곳에 나를 내려놓는 순간 울린 벨소리에 깨어났다. 사람들은 이 상자를 ‘베이비박스’라고 부른다. 반대쪽 문이 열리더니 마음씨 좋아 보이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나를 안아주셨다. 그나마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해마다 엄마 배 안에서 수술도구로 살해당하는 아기들이 많다고 한다. 장애를 안고 태어나 주차장 한 구석에 버려지거나, 여고생 엄마가 화장실에 놓고 가는 아기들도 한 해 50~100명이 된다고 한다. 내가 태어난 이 나라는 수출로 흥한 나라여선지 세계 유수의 ‘입양아 수출대국’이라고 한다. ‘낙태 대국’이라는 말도 들린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다.”

 

 

 

마주 선 철로처럼 접점을 찾기 힘든 대표적인 이슈가 낙태와 피임을 둘러싼 찬반 양론이다. 사후 응급피임약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 약국에서 쉽게 구입하게 하는 대신, 사전 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재분류하자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피임약 재분류안을 놓고 어제 열린 공청회에서도 첨예하게 입장이 갈렸다고 한다. 지난 9일에는 국내 처음으로 ‘생명 대행진(March for Life)’ 행사가 서울에서 열렸다. 프로라이프연합회는 낙태반대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이 행사를 매년 열기로 했다.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죄에 대한 양형 기준 제정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2009년 개정된 모자보건법은 임신 24주 이내에만 낙태시술을 허용하고 있다. 임신 12주 이내로 해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하지만 언제부터 생명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모두가 만족할 답은 없다. 종교적이건, 생명학적이건 신념과 신념이 부딪치는 한 중간지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경제적 이유에 따른 낙태를 줄이고, 버려지는 아기들을 사회가 보듬으며, 미혼모들에게 안전한 양육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점에는 이견이 적다.

 

프로라이프연합회의 5대 요구 가운데 죽음의 문화가 아닌 생명의 문화를 향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국가가 미혼모·장애아 가정 등의 임신·출산·양육 예산을 대폭 증액해 지속적으로 지원하자는 주장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담겨 있지 않을까 싶다. 글머리의 한 아기 독백은 버려지는 아기들을 인수받기 위해 한 교계 단체가 2009년 12월 서울 난곡에 설치한 베이비박스에서 착안했다. 단 하나의 아기상자에서 지금까지 장애아 18명을 포함, 70명의 아기를 구했다고 한다.

 

'칼럼 > 여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40년 뒤, 7월4일  (0) 2012.07.04
부자의 자격  (0) 2012.07.03
기억의 장례  (0) 2012.06.12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  (0) 2012.06.06
영어 양극화  (0) 2012.06.05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