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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자격

칼럼/여적

by gino's 2012. 7. 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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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논설위원

 

 


어느 정도 재산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할까. 연령·지역·직업·부의 원천에 따라 천차만별인 만큼 우문이 아닐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곳간이 클수록 메우려는 탐욕도 커진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100억원 이상의 부자 10명 가운데 8명은 스스로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엊그제 발표한 ‘2012 한국 부자보고서’의 조사결과다. 10억원에서 50억원대 재력가 10명 중에서는 달랑 1명만 스스로를 부자로 여겼다. 보고서가 부자의 기준으로 정한 것은 현금자산 10억원 이상이다.

 

“만석 이상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르침은 400년 명문가의 맥을 이었던 경주 최부잣집에서나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작금의 만석꾼은 10만석을, 10만석 부자는 100만석을 꿈꾸고 있다. 한국 부자들의 평균 자산은 144억원이었지만 이들이 향후 갖고 싶어하는 재산규모는 평균 237억원이었다.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한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ㅣ 출처 : 경향DB

열심히 일해 부를 일구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덕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국 부자들이 일을 해서 부를 유지, 확대하려 하기보다 여전히 부동산·금융투자 또는 투기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사업체 운영(47.8%)이나 급여(3.8%)로 부를 늘리겠다는 부자는 2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일하는 부자의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디지털 엘리트’들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행운이 겹쳐 거만의 부를 축적했지만,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고, 주말에도 10시간 정도 다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노동자 계급 백만장자’라는 신조어가 나왔겠는가. 그러나 이들을 독한 노동으로 끌어들이는 가장 큰 동기 역시 더 큰 부자들과 가까이 살면서 느끼는 상대적 빈곤감 때문이라고 하니 부자들의 곳간 욕심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올해 한국 부자들의 동향 가운데 주목되는 대목은 사회공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인(34.8%)에 비해 많은 비율(44.3%)로 기부에 참여하고 있었다. 1년 평균 기부액은 1893만원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슈퍼리치들에게 세금을 더 걷어가라”면서 기부서약운동을 벌이는 워런 버핏과 같은 ‘현대판 최부자’가 등장했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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