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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손톱’ 만큼 수상한 美쇠고기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1. 4.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언제부터인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삐딱한 입장을 취하면 반애국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풍조가 굳어져 간다. 지난해 10월쯤 미국산 쇠고기에서 손톱만한 뼈가 발견되자 FTA 지지여론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면서 분개했다. 군사동맹과 함께 한·미관계의 양대 척추가 될 경제동맹(FTA)의 대의 앞에서 손톱만한 뼈에 연연하는, 소아병적인 자세라는 투였다. 통크게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완력’은 반년 넘게 계속됐다. 덕분에 올 4월부터는 작은 뼈가 발견되어도 해당 박스만 제외하고 나머지는 받아들였다.

한국 경제관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한·미간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합의할 때 ‘뼈없는(deboned)’의 의미를 손톱 크기의 작은 뼛조각으로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법하다. 쇠고기 문제를 과소평가하던 ‘애국여론’도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로 분류된 등뼈가 발견되면서 다소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FTA의 가도에 놓인 방해물에 대한 불만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난달 말 워싱턴을 방문한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과학적인 문제”라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전문가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산 쇠고기에서 등뼈가 나올 확률은 0.01%라고 강조했다. 70만개의 수입 쇠고기 박스 가운데 7개에서 발견됐다는 통계에 근거한 말이다. 물론 70만개를 다 뒤져보았을 경우에 성립되는 논리지만.

미국산 쇠고기는 불행히도 미국내에서 끊임 없이 적신호를 보내고 있다. 손톱만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대 메이저 카길사는 엊그제 100만파운드(453t)의 쇠고기를 긴급 리콜했다. 대장균(E. coli O157) 감염 탓이다. 이미 10개주의 슈퍼마킷 체인점을 통해 퍼진 뒤였다. 지난달 초 84만파운드를 자진 리콜한 데 이은 조치다. 9월말 또 다른 업체(Topps)는 미국내 쇠고기 리콜 사상 두번째 규모인 2170만파운드(9843t)의 간고기를 리콜한 뒤 문을 닫았다. 이들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제품을 회수한 건 물론 아니다. 40여명이 식중독을 일으키고, 피해배상 소송이 벌어지면서 내린 고육책이다. 이쯤 되면 미국의 쇠고기 안전 시스템에 의문이 깃들지 않을 수 없다.

탈냉전 이후 국가간 모든 협상을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돈이다. 무역협상은 물론 안보협상에서도 돈이 관건이다. 돈과 돈이 부딪쳐 언성을 높이다가 슬며시 합쳐지고, 많은 경우 주고받는 게 협상이다. ‘피로 맺은 동맹’이라지만 ‘피’보다 무서운 게 ‘돈’이다. 평화도 돈으로 환산된다. 우리 정부 고위관리들이 북핵이 원만하게 해결될 경우 가장 먼저 얻게 될 혜택으로 주식시장의 활황세를 꼽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게 있다. 국민건강이 그중 하나다.

0.01%는 티끌만한 가능성이다. 하지만 4500만명의 0.01%로 환산하면 작은 문제가 아니다. 미 의회는 내년 대선을 앞둔 국내정치 사정으로 한·미 FTA 인준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잘해야 내년 말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 사이 “쇠고기 없으면 FTA 없다”는 미측의 으름장에 행여 ‘손톱’을 포기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혈맹도 좋고, ‘전맹(錢盟)’도 좋지만 수상한 쇠고기를 먹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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