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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주의에 매몰된 대한민국 외교부

칼럼/워싱턴리포트

by gino's 2007. 9. 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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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 특파원


 

2004년 4월 한국인 목회자 7명이 이라크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직후의 일이다. 외신 보도와 함께 바그다드의 한 호텔에 피랍자들이 도착한 TV 화면을 보고 주 이라크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한국인 피랍자들의 생환 사실을 확인해줄 수 있는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하 코이카) 직원이 호텔로 갔다. 피랍자들을 대사관으로 데려 오기 전에는 공식 확인을 해줄 수 없다."
"호텔이 대사관에서 먼 곳인가."
"자동차로 5∼10분 거리다."
"온 국민이 피랍자들의 생환을 궁금해 한다. 직접 호텔로 가 확인해줄 수는 없겠는가."
"이곳의 위험한 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렇게 밖으로 나돌아다닐 수가 없다."
당시나 지금이나 바그다드 치안이 불안한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그토록 위험한 대사관 울타리 밖을 코이카 직원은 다녀도 되고 왜 외교관은 안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교부 직원들의 '표준'은 아닐 게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이 존재하는 건 분명하다.


이라크 한국인 목사 피랍 사건 관련 보고를 받고 있는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출처 : 경향DB)



같은 해 여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담 취재를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했을 때 겪은 일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다. 행사 진행을 코이카 봉사대원들이 돕고 있었다. 그들이 행사 기간 중 한 일이라곤 현지어(마인어) 통역과 진행 등 파견 업무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꼭 필요했던 이유는 대사관의 일손이 달려서만은 아니었다. 불과 석달간 언어훈련을 받았지만 코이카 직원들이 큰 무리없이 마인어 소통이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사관의 편의를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봉사하라고 파견한 코이카 대원들이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야 했다. 여기서도 외교관과 비외교관의 '구별짓기'가 엿보인다.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을 발의했던 마이크 혼다 의원의 홈페이지에는 히스패닉 유권자용 사이트가 마련돼 있다. 청년 시절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엘살바도르에서 '세계'를 배운 덕택이다. 청년 크리스토퍼 힐(국무부 차관보)은 카메룬에서 보낸 한 시절의 경험으로 인생의 좌표를 바꿨다. 암기 능력을 평가하는 외무고시제가 없는 미국에서는 외국을 체험한 사람들이 외교정책의 집행과 감독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활동한다. 중앙정보국(CIA)에도 제3세계를 경험한 평화봉사단 출신들이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외교부가 160여명의 지역.다자협력.의전.영사 분야 등의 전문가를 중하위직(5∼7급) '계약직'으로 채용한다는 말이 들린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외부 수혈로 외교부에 입성한 전문가들은 겉돌다가 외교관 길을 포기하기 일쑤다.

"어차피 그들도 경력삼아 외교부에 들어올 것"이라는 말도 외교부 당국자들 사이에서 들린다. 미 국무부 업무의 태반을 수행하는 계약직(contractor)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외교부 내 '순혈(純血)주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무더기로 충원된 계약직 직원들은 또 다시 '인공위성'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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