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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시달리는 ‘3자 또는 4자’ 외교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0. 14.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실수를 알쏭달쏭하게 해명하려면 무리가 따른다. 또 다른 오해를 부르기 일쑤이고, 다시 번복해야 하는 순환 논리의 덫에 빠진다.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한국전쟁 종식선언의 주체로 명시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 그러했다.

지난주 정상회담 결과 설명차 워싱턴을 찾은 한국측 인사들은 ‘3자’의 의미에 대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이미 국내에서 ‘남북·미’냐 ‘북·중·미’냐 하는, 비생산적인 시비를 겪은 뒤 끝이다. 이에 대응하는 한국 외교에는 균형도, 소신도 보이지 않았다.

‘3자’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중국이다. 정전협정의 당사국인 중국이 빠질 수도 있다는 암시에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한국측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입’에서 근원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종전선언의 주체로 남북한과 미국을 지목했기에 ‘3자’가 된 게 아니냐”는 설명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공개 설명회에서 “종전선언은 남북·미 3자가 하고, 평화협정 논의는 중국이 포함된 4자가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한국측이 어렵사리 ‘개발’한 논리는 설명회에 참석한 미국측(모린 콜맥 국무부 한국과 부과장)의 반박에 머쓱해졌다. 미측은 “부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참가국 숫자를 정한 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정부의 첫번째 실수는 남북 공동선언 채택 시 북측이 가져온 ‘3자’라는 문구를 지우지 못한 데 있다. 논란의 여지를 없애려면 9·19 공동성명에 적힌 대로 ‘직접 당사국’으로만 명시하자고 했어야 했다. 평양에서 그 기회를 놓쳤다면 “북한이 3자를 원했지만 우리 원칙은 4자”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어야 한다. 그래야 북·중의 문제로 돌리고 발을 뺄 수 있다. 우리가 나서 북한 의도를 덮으려다 보니 엉뚱하게 부시 대통령을 끌어오는가 하면, 서둘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논의를 분리하는 우를 범했다.

굳이 따지자면 중국이 종전선언에 꼭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 종전협정에 서명한 주체는 ‘중국’이 아니라 ‘중국 인민지원군’이다. 인민지원군은 1950년대 말 해체됐기에 실체가 없다. 중국은 또 94년 정전위에서 철수, 협정의 당사국 지위를 스스로 버렸다. 물론 6자회담 의장국으로 한반도 평화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중국을 제외해 불필요한 논란을 야기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논란을 야기하고, 그걸 덮는다고 어설프게 나서다보니 정작 중요한 ‘평화’ 논의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점이다.

참여정부는 ‘동북아 균형자(Balancer)’ 역할을 하겠다고 누차 공언한 바 있다. 상황에 따라 북·중·미로 왔다갔다 하는 게 균형은 아닐 터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논의는 동시에 할 수도, 따로 할 수도 있다. 아직 ‘직접 당사국’ 중 어느 쪽도 이를 결정한 바가 없다. 사실, 오락가락하기는 미국이 더하다. ‘안보계획(security arrangement)’ ‘종전선언’ ‘평화조약’ 등의 표현을 섞어 쓴다. 전혀 개념이 정리돼 있지 않다. 평화 논의에 우리만큼 더 진지하고, 절실한 직접 당사국은 없다. 책임 있는 균형자 외교를 하려면 용어부터 잡아줘야 할 것이다. 갈대는 균형을 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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