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논설위원
'빛나는 베일'
2012.8.2.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은 잉게보르크 바흐만의 시에서나 살아 있다. 삶을 포기하고 허공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겨드랑이에서 저절로 날개가 돋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자살자가 많은 사회는 종종 물리적으로 자살을 예방할 방안을 찾아낸다. 캐나다 토론토의 프린스 에드워드 비아덕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와 함께 세계적으로 자살자가 많은 다리였다. ‘자살 자석’으로도 불렸다. 2003년까지 500여명이 투신자살했다.
토론토 시의회가 550만달러(약 62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3년 다리 위에 설치한 ‘빛나는 베일(Luminous Veil)’은 자살 방지 시설도 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9000개의 철강을 5m 높이, 12.9㎝ 간격으로 촘촘하게 배치해 경관을 살리면서 제 역할도 해냈다. 캐나다 건축상을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시당국도 누적 자살자가 1200명을 넘은 금문교에 자살 방지 시설 건립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 마포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강변북로에 안개가 자욱하다. (경향신문DB)
한강에서 가장 투신자살자가 많은 다리는 마포대교이다. 최근 5년간 108명이 투신해 48명이 숨졌다고 한다. 다음달부터는 홀로 마포대교를 걷다가 느닷없이 “혹시, 지금 보고 싶은 사람 있어요? 그냥 마음속에 툭 떠오르는 사람, 친구도 좋고, 가족도 좋고…”라는 메시지를 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가 한 생명보험사의 아이디어로 자살 방지용 쌍방향 소통형 장치를 설치한다고 한다. 보행자의 움직임을 센서로 감지한 뒤 이상 조짐이 있으면 메시지와 조명으로 마음을 토닥여준다는 아이디어다.
투신자살을 막거나 줄일 수만 있다면 시도해볼 만한 일이다. 하지만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28.1명으로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 현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 대응하기엔 너무도 엄중하다. 토론토 대학 연구팀의 조사 결과 ‘빛나는 베일’ 덕에 한 해 평균 9.3명이 자살하던 프린스 에드워드 비아덕트에서는 2006~2007년 단 한 명의 자살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 전체 자살자는 전혀 줄지 않았다. 자살자들이 거추장스러운 방지시설이 없는 다른 다리를 찾기 때문일 것이다. 양극화 시대, 자살은 많은 경우 사회적 타살이기도 하다. 빛나는 베일이건, 쌍방향 소통이건 어떤 기발한 자살 방지 장치도 튼실한 사회적 보호망만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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