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부터 4년 가까이 발칸반도의 심장부를 피로 물들인 보스니아 전쟁은 인종과 종교 갈등에 더해 각 계파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욕이 빚은 참극이었다. 보스니아계·크로아티아계·세르비아계가 각각 역사 속 증오의 상징을 들고 벌인 ‘기억의 전쟁’이기도 했다.
크로아티아계는 우스타샤의 적·백 체크무늬 깃발을, 세르비아계는 해골 그림에 ‘왕과 조국을 위하여, 자유냐 죽음이냐’라는 문구가 적힌 체트니크 문장(紋章)을 각각 들고 나왔다. 나치즘과 파시즘을 민족주의와 결합시킨 우스타샤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최소 30만명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학살했다. 일부 보스니아계 회교도들이 우스타샤의 학살극에 동원됐다. 체트니크는 1940년대 테러와 인종청소를 통해 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를 몰아내려 했던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의 무장단체이다.
퇴행적 민족주의는 과거 증오의 상징을 꺼내와 현재의 증오를 증폭시키는 습성이 있다. 일제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런던올림픽 경기장에 태연하게 들고 나왔던 일본 보수우익들 사이에서 이번엔 육전대(陸戰隊) 부활론이 나왔다. 장본인은 이달 말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 이시바 시게루 전 정조회장. 그는 지난 주말 공개토론회에서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실효지배 강화를 다짐하면서 해병대 창설을 주장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들이 전쟁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출처: 경향DB)
한국의 해병대에 해당하는 육전대는 일제 해군의 상륙부대로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선봉에 섰던 부대이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 해군은 10만명의 육전대를 편성, 본토 결전을 준비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1875년 운요호 사건 당시 강화도에 상륙해 살인·방화·약탈을 자행한 부대로 기억된다. 대표적인 공격용 부대이기에 1945년 해체됐다. 패전국 일본은 타국을 선제공격할 권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시바의 해병대 창설론은 갈수록 굵어지는 일본 우경화와 군사대국화의 양대 흐름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증좌로 해석된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지난주 자신이 창당한 일본유신회의 로고에 독도와 센카쿠를 집어넣었다. 이들은 모두 일본이 직접적인 공격을 받지 않아도 타국을 선제공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주장하고 있다. 중·일 간 센카쿠 분쟁으로 동중국해에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는 요즘이다. 이들이 평화헌법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까지 깨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