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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정치

칼럼/여적

by gino's 2012. 9. 1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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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상원이 올해까지 15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해온 행사가 있다. 조지 워싱턴의 생일인 2월22일에 즈음해 그의 1796년 고별연설문을 읽는 행사이다. 7641개 단어로 된 ‘벗들과 동포 시민들에게’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잡아 45분.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갈마들며 읽는다. 


연례낭독이 시작된 것은 남북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던 1862년부터다. 누란의 위기에 처해 지역 분리와 정파 싸움 및 외세 간섭이 공화국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워싱턴의 경고를 되새김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지금 여기’의 정치인으로 돌아와 이전투구를 벌일지언정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일회성 행사만이 아니다. 특히 역사적 인물들은 미국 연방의사당의 일상적인 토론에 끊임없이 불려 나온다. “조지 워싱턴은 평생 단 한 차례도 후퇴한 적이 없다. 그 정신을 본받아 이 법안을 통과시키자”고 한쪽이 주장하면, 다른 쪽이 “무슨 소리냐. 조지 워싱턴은 뉴욕에서도, 델라웨어강에서도 후퇴를 결정했다”는 식으로 되받는다. 역사에 무지한 의원들은 망신 당하기 일쑤다. 성경 다음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출간된 책들은 조지 워싱턴이나 에이브러햄 링컨(또는 남북전쟁)을 다룬 것이라고 한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5·16 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 긴급조치, 인혁당, 장준하 선생 타살 의혹…. 올 대선판에 유난히 역사가 넘친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물론 평소 역사 따위는 까마득히 잊고 산 정치인들일수록 꽤 불편해하는 것 같다. “과거를 묻고 미래를 보자”는 볼멘소리들이 너무 자주 들린다. 그중 압권은 지난주 박 후보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의문 제기에 “다들 배가 부른가보지?” “정치의 중심을 국립묘지로 옮기려는 것이냐”는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망언들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반듯한 역사보다 뒤틀린 역사가 더 중요하다. 끊임없이 감시하지 않는 한 언제든지 무덤에서 뛰쳐나올 좀비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웃 일본에서 ‘유신’을 들먹이는 극우파들이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테러를 한 것이 좋은 본보기다. 


역사와 정치가 무관하다는 생뚱맞은 주장을 내놓으려면, 제2의 유신시대를 기대하며 침묵하기를 권한다. 아, 그런 시대의 재림을 위해 이미 발벗고 나섰던가. 정치의 중심은 늘 국립묘지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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