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한 일왕은 현 아키히토이다. 1993년에 이어 패전 50주년인 2년 뒤 오키나와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한번이라도 전과를 올려야 (전후)교섭이 쉽게 풀릴 것”이라는 선왕 히로히토의 교시 탓에 60만 현민이 옥쇄를 강요당했던 오키나와다. 그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평화를 염원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힐링 행보’는 선왕 사망 석 달 만인 1989년 4월 전쟁 중 중국에 끼친 피해에 대해 유감표명을 하면서 예고됐다. 3년 뒤 베이징을 방문했다. 2001년 12월23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한·일 갈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느닷없이 8세기 간무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말해 친근감을 드러냈다.
2005년 6월에는 태평양전쟁 격전지인 사이판을 찾아 희생자들을 애도했던 그다. 일본군 전사자뿐 아니라 당시 사망한 미군과 한국인 징용자, 현지 주민들의 넋도 위로해 주목을 받았다.
일본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초의 대지진 폐허를 찾은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 왕비 (출처 : 경향DB)
이달 초 이명박 대통령의 느닷없는 독도 방문과 일왕 사죄 요구 발언으로 한·일관계가 험악해진 가운데 그가 양국간 우호관계 유지를 위해 한국 방문 의향이 있음을 밝혔다고 한다. 지난 19일 발매된 일본 주간지 ‘여성자신’이 전한 소식이다.
물론 그는 아직까지 오키나와를 비롯해 일제의 피해를 입은 주변 국가들을 방문한 자리에서 직접 ‘사죄’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유감을 표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을 뿐이다. 일본 왕실의 전쟁책임론을 인정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의 즉흥적인 사죄 요구 발언에 “일본 국민감정을 해치는 발언”이라면서 호들갑을 떤 일본 각료들보다는 넓은 도량을 지니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일왕의 방한 성사에는 넘어야 할 난관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일왕의 외국방문에는 일본 정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대통령의 발언 탓에 일본 정부 내에서는 일왕의 방한이 “10년은커녕 100년은 멀어졌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고 한다. ‘사죄 없는 방한’을 반대하는 한국 내 여론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우요쿠(우익)들이 다시 ‘칼’을 꺼내들고 주변국 국민들의 증오심을 덧들이는, 하수상한 요즘이다. 아키히토 일왕이 모처럼 풍기는 국화향이 반갑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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