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25.
국가 간에 여러 외교 현안들이 있다면 각각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현안에서 한발씩 양보해 접점을 도출해내는 지혜가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같은 외교 현안이라도 자국민의 피와 눈물이 배어 있는 사안이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외교통상부가 오는 28일 김성환 장관의 유엔 총회 연설을 앞두고 위안부 관련 내용을 연설문 초고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정부는 다음달 중순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진출이 걸린 투표를 앞둔 시점에서 양자 간 현안을 놓고 일본과 싸우는 모양새가 득표전에 도움이 안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김 장관보다 앞서 25일 총회 연설을 하는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의 관련 언급 및 독도 영유권 주장의 강도를 보고 수위 조절을 할 것이라는 말도 전해진다. 하지만 외교부가 실용 또는 상황 논리에 매몰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당한 문제 제기를 우회한다면 사안의 경중이 뒤바뀐 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안정을 관리하기 위해 안보리에 교두보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이러한 외교적 현안과 맞바꾸어 타협할 사안이 아니다. 더구나 이명박 정부의 실패가 웅변하는 바, 유엔의 지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의 정치적 의지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반인도적 범죄의 범주에서 위안부 문제에 높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기도 하다. 2007년 미국 하원을 필두로 네덜란드·캐나다·유럽의회·필리핀 의회가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및 공식사과를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일본은 그럼에도 국제사회를 상대로 1965년 한일협정으로 법적으로 해결된 문제라는 역선전을 퍼뜨리면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노다 총리는 어제자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한·일 간에 비공식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연막을 피우면서도 종래 입장을 되풀이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두 차례 일본에 양자협의를 제안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느닷없는 독도 방문 탓에 해결 전망이 더욱 어두워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아무리 어려워도 정부가 백방으로 해결 노력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한·일 양자 간 현안을 넘어선 글로벌 현안이기도 하다. 이를 대표적인 다자외교무대에서 우회한다면 단순히 외교부의 무능을 넘어 무성의함을 확인시킬 뿐이다. 외교부는 소극적 태도를 벗고, 오히려 유엔 위안부 결의안 추진 또는 한일협정에 따른 중재위원회 회부 등의 적극적인 대응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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