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바꾸자, 삶을 바꾸자.’ 리오넬 조스팽 총리의 프랑스 사회당 정부가 2000년 초 주당 노동시간을 39시간에서 35시간으로 줄이면서 내세운 구호다. 조스팽 정부는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현실과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이상을 접목, 주 35시간 근무를 의무화한 ‘오브리법’을 제정했다. 프랑스 재계는 고용비용 증가에 따른 경쟁력 저하를 들어 집요하게 반대했지만 노동시간 단축의 큰 흐름을 거스르진 못했다. 이후 우파 정부들이 연간 초과노동시간의 한도를 올리는 방식으로 수정을 가했지만 법의 골간은 유지한 까닭이다.
유럽연합 초대 집행위원장인 자크 들로르의 딸, 마르틴 오브리. 조스팽 정부에서 사회장관으로 35시간을 법제화한 오브리법을 만든주역이다. 1998년부터 2년간 벌어진 국가적인 토론과정에서 재계와, 우파의 격렬한 저항을 담대하게 깨트렸다. 프랑스에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후보 1순위.
‘메트로(출퇴근)·불로(일)·도도(잠)’라는 말이 있듯이 프랑스 역시 대다수 민초들의 삶은 단조롭다. 하지만 노동시간이 줄면 그만큼 삶의 여백은 늘어난다. 오브리법은 당초 목표의 절반에 불과한 35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봉급쟁이들은 종전대로 주 39시간을 일할 경우 한 해 25일의 법정 유급휴가를 추가로 얻게 됐다.
한국인들의 여가시간과 여가비용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어제 발표한 ‘2012 국민여가활동’ 조사 결과 하루 평균 여가시간은 평일 3.3시간(휴일 5.1시간), 평균 여가비용은 12만5000원이었다. 2년 전 조사에 비해 여가시간은 평일 0.7시간(휴일 1.9시간), 여가비용은 4만3000원이 준 수치다. 지난 1년간 가장 많이 한 여가활동이 TV 시청(77.8%)인 걸 보면, ‘출퇴근·일·TV·잠’이 한국인 삶의 현주소인 셈이다. 조사 대상자들이 여가생활의 가장 큰 불만으로 시간부족(48.2%)을 꼽은 것을 보면 결국 주당 평균 50시간에 육박하는 노동시간의 문제로 귀결된다.
문화부는 내년 중 여가기본법 제정을 추진해 국민들의 여가활동을 장려할 계획이라고 한다. 여가비용의 문제는 정부·지자체·기업체가 각각 문화 또는 여가활동 접근권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가시간을 늘리려면 결국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 프랑스의 경우처럼 국가가 어느 정도 강제성을 부과하지 않는 한 개선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문화부의 같은 조사에서 주 40시간 근무제 실시율은 2006년 62.1%에서 올해 36.4%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시간이 바뀌어야만 삶이 바뀐다. 그 시간은 국가만 바꿀 수 있다.
201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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