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는 청와대의 엊그제 심야 입장 발표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프로세스가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위태롭게 유지해온 메시지 관리에 실패한 것은 물론 청와대와 외교안보 관련 부처의 고위 당국자들이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 꼴이기도 하다. 통일부는 그제 오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남측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발표한 뒤 “너무 단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라면서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조평통이 “대화 의지가 있다면 근본적인 대결자세부터 버려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미루어 최종적인 대화 거부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정부의 입장은 같은 날 밤 주철기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느닷없는 입장 표명으로 뒤집혔다.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문제가 있었다. 정부는 지난 1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성명을 통해 북한에 포괄적인 대화 의지를 밝혔음에도 그제 청와대 입장은 개성공단 문제에 국한됐다. 애당초 통일부 장관 성명을 놓고 대화 제의가 아니라고 했다가 ‘사실상의 대화 제의’라고 번복하던 혼선을 되풀이한 것이다. 정부 내 협의기제의 실종은 물론 청와대와 정부를 통틀어 상황을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컨트롤타워가 없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형식은 더욱 문제다. 조평통은 북한 노동당의 외곽조직이다. 필요했다면 ‘통일부 대변인 문답’ 정도로 응답하는 것이 적절했다고 본다. 청와대가 “대통령의 뜻”을 내세우면서 거창하게 나설 상황이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에는 위기 국면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개성공단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통일부로 창구를 일원화한다고 했다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물론 다른 고위 관계자들까지 나서고 있다. 국가안보실은 왜 만들어 놓았는지 참으로 궁금할 지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적절한 인물을 지명해 나라 안팎을 상대로 한 메시지 관리의 전권을 위임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어제 김일성 주석의 생일(태양절) 행사를 마치고 다음 수순을 준비하고 있다. 조평통 대변인의 언론문답이 북한의 최종 결정이라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북한은 아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대화 제의에 대해서도 응답을 미루고 있다. 케리 장관이 “며칠 내에 있을 것”이라고 공언한 중국의 조치도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시위와 한·미 합훈 역시 진행 중이다. 북한은 나름대로 중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린 뒤 치밀하게 준비한 각본대로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한 북한과 상대하면서 큰 틀의 전략적 결정을 내리기는커녕 기본적인 상황 관리에서조차 내용적, 절차적 미숙함을 노출한다면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북한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을 보일수록 국민의 불안은 더욱 커진다. ㅣ수정 : 2013-04-15 21: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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