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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왜 평양보다 서울이 더 요란한가

by gino's 2013. 12. 16.

국가정보원이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 가능성을 처음 밝힌 지난 3일, 진위를 떠나 “왜 지금 발표할까”하는 의문부터 떠올랐다. 국정원 개혁 필요성이 국민적 공감대를 넓혀가던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정국 중 뒷방에서 댓글을 퍼나른 죄과 탓이다. 이후 북한이 장성택의 숙청을 결정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 내용과 관련 사진을 공개함으로써 실제 사태로 이어졌다. 지난 13일 새벽에는 전날 열렸던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초췌한 모습의 장성택의 마지막 사진과 함께 그에 대한 처형 사실을 내보였다. 의혹과 경악, 충격의 끝은 섬뜩하리만큼 잔잔하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이후 인민군 설계연구소와 마식령 스키장 건설현장 등을 방문해 연일 파안대소를 흘리는 모습을 내보이고 있다. 딸을 한명 두며 수십년 해로했던 장성택의 부인 김경희 노동당 비서 역시 건재한 것으로 보도됐다. 40여년 동안 당과 내각, 군에서 고위직으로 지내오며 깔아놓았을 장성택의 인맥이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북에선 반당반혁명종파분자로 국가전복음모를 획책했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의 주변을 단속하는 작업이 진행 중일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스키장이나 둘러보는 김 제1비서의 일거수 일투족은 한가롭기조차하다. 공포의 소용돌이 속에서 웃을 수 있는 권력의 냉혹함을 새삼 깨닫게 한다. 


北 김정은,삼지연혁명전적지 방문(출처 :연합뉴스)


요란한 움직임은 되레 한반도 남쪽에서 나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0일 “북한은 현재 김정은의 권력강화를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하면서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어제는 “북한 정세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불투명하며 무모한 도발과 같은 돌발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외교안보장관 회의도 소집했다. 실로 오랜만에 존재의 가치를 입증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의 행보는 소란스럽다. 불안하기까지 하다. 국회 정보위원회를 확성기로 삼아 북한이 올해만 40여명이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서상기 정보위원장(새누리당)은 한술 더 떠서 장성택에 대한 기관총 사살설을 퍼뜨렸다. 



‘복수의 안보당국 관계자들’은 사안의 위급성을 강조하는 데 급급했는지 정보기관 종사자의 금도마저 넘었다. ‘군·정보당국, 장성택 실각 감청으로 확인’이라는 특종보도를 제공해주었으니 하는 말이다. 한 종편방송이 얼마전 대대적으로 보도한 뉴스다. 정보기관이 무슨 일이 있어도 감췄어야 할 정보소스였다. 오죽하면 조너선 폴락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이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국정원 스스로) 통신정보라는 소스를 노출함으로써 북한 사람들은 더욱 통신 보안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면서 안타까워했겠는가. 국정원 작품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군당국이 수집한 1차 정보를 발표만 국정원이 했을 뿐이다. 국정원의 행태를 보고 외교가에서는 “누가 한국과 대북정보를 공유하겠는가”하는 우려가 새나오고 있다고 한다. 그 와중에 국정원이 슬그머니 내놓은 자체 개혁안은 싱겁기 짝이 없다. 국정원법이 기왕에 금지하고 있는 정치개입금지 조항을 잘지키겠다는 서약만 하고 넘어가겠다는, 개혁안 아닌 개혁안이었다.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익명의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이 장성택의 실각으로 흔들릴 체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장성택 처형을 둘러싼 국정원과 청와대의 과잉 홍보가 모두 정치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를 풍겨온 것은 사실이다. 


장성택은 북한의 대중, 대남 경제협력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당연히 우리의 관심은 장성택 이후 북한의 행보를 예의주시하면서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 요란한 숙청 끝에 애써 여유를 부리는 평양의 행태는 물 밑에서 치열하게 발길질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유유하게 수면을 가르는 오리를 연상시킨다. 서울의 행태는 정반대다. 물 위에선 추측과 가능성에 기반을 둔 발길질이 요란하지만 정작 물 밑에서 어떠한 대응책을 고민하고 있는지 묘연할 따름이다. 북한 급변사태는 아직 시나리오이다. 조용히 대비하길 바란다. 그전에 국가 중추 정보기관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는 발등의 불부터 끄기를 바란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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