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백화제방(百花齊放)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질서가 있었다. 56개 민족을 한 줄로 엮어 ‘국족(國族)’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굵직한 흐름이 감지됐다. 특히 60년이 지난 한반도 정전체제와 20년이 지난 북한 핵문제의 해법을 모색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오래된 설계도를 그대로 틀어쥐고 있었다.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만난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에게서 받은 인상이다. 동아시아재단과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이 공동주최한 제1회 한·중 대화에 참석했다. 그 주변에서 중국 공산당 이론가들을 만났다. 학자임을 강조하지만 기실 시진핑 시대 대외정책에 적지 않은 입김을 행사하는 분들도 포함됐다.
중국의 한반도 입장은 잔잔한 연못 같았다. 수표면에 미세한 물결이 이는 듯했지만, 다시 살펴보면 그대로 고요하다. 지난 2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채택 및 이후 이행과정에서 중국이 예전과 달리 사뭇 단호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다. 지난 6월 베이징 한·중 정상회담 이후 서울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 입장이 강경해졌음을 시사하는 기대감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번 방문에서 중국의 전략적 목표(한반도 안정)와 수단(한반도 비핵화)은 바뀌지 않았음을 새삼 발견하게 됐다. 한 전문가는 양의(洋醫)와 중의(中醫)의 차이를 빌려 설명했다. 중국 내에도 서양의학식 외과수술로 북핵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과 중의학적 처방으로 문제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는 주장이 공존하지만 정작 기본입장은 불변이라는 설명이었다. 핵실험과 같은 북한의 잘못은 질타하되 한반도의 안정을 추구하는 정책 근간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뀌지 않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유지돼온 한반도 현상유지론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북한 핵문제의 뿌리는 북한의 안보상 우려에 맞닿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렇다고 중국이 북한에 핵우산을 제공해줄 수는 없지 않으냐”는 반문이 이를 압축해 말해준다. 하지만 미국이 할 수 있는 것은 많다는 것이 중국 측 논리의 핵심이었다. 북한 핵무기는 물론 남한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도 함께 제거해야 한반도 비핵화가 달성된다. 미국과 남한의 결심이 필요한 대목이다. 여기에 관계정상화를 통해 북·미 안보협정이라도 맺으면 북한의 안보적 우려는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미 . 중 외교장관 회담 (출처 :AP연합)
미국은 한반도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을 유지하려고 한다. 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다는 생각이 상당수 중국 전문가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재래식 군사 도발은 서해상의 한·미 합훈과 미·일의 동북아 미사일방어(MD) 시스템 구축으로 중국의 안보적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는 불만과 연결된 생각이다. 그렇다고 중국이 나서 북핵 문제나 한반도 근본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읽히지 않았다.
미국 고위당국자들은 북핵 문제가 악화될 때마다 중국의 역할을 당부한다. 내놓고 말은 않지만 북한 정권 유지의 생명선이라고 할 수 있는 원유와 식량 공급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중국이 대북 압박을 가해주기를 기대한다. 일종의 아웃소싱이다. 중국은 그러나 대북 생명선을 차단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깨진다는 점에서 이를 받아들이는 데 주저한다. 중국 전문가들은 역발상의 접근으로 미국과 남북한에 해결을 아웃소싱한다. 나서서 해결은 못 해주지만 6자회담의 대화 탁자 정도는 마련해주겠다는 게 중국이 자임하는 역할의 한도인 것이다. 큰 말썽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되도록 ‘뜨거운 감자’를 입에 넣고 싶지 않은 것이 미·중의 복심이다. 그나마 중국은 ‘제한된 역할’일지언정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물밑에서 꾸준하게 움직이고 있다.
어떠한 전략적 밑그림도 그려내지 않으면서 불과 몇달 전 “중국이 변했다”고 환호작약했던 서울은 정치적 내전상태다.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한국의 전력이 북한의 80%”라면서 국토방위를 미국에 아웃소싱하고 있음을 털어놓는다. 뒷방에서 댓글이나 달던 국정원 개혁은 정치 논리 속에 함몰됐다. 정치 쟁점으로 변질된 북방한계선(NLL) 논쟁은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러운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미·중의 전략적 이해가 엇갈리고 우경화된 일본에선 새로운 정한론(征韓論)이 새나오는 지금, 여기 한국 정부의 역할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지독한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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