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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전쟁과 평화, 남북은 어디쯤 있을까

by gino's 2014. 1. 20.

올 상반기까지 한반도 정세는 예측이 쉬워졌다. 향후 몇달간 벌어질 구체적 상황의 세밀화야 미리 알 방도가 없지만 그 방향성만은 뚜렷하게 읽힌다. 새해 첫 남북 간의 대화공세 역시 징조가 나쁘지는 않았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시험발사 성공과 3차 핵실험 사이에서 맞았던 작년 초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하지만 적어도 당분간 서로 기싸움을 하는 형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박근혜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대북 태세를 보면 더욱 그렇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를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대남 중대제안을 통해 오는 30일부터 상호비방 및 중상 금지와 군사적 적대행위의 전면 금지를 제안했다. 북한의 제안은 새로운 내용이지만, 조건은 오는 2월 말부터 시작하는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이다. 서해 5개섬에서 상대방 자극 행위를 중단하겠다는 제의를 덤으로 얹었다. 대화와 협상에서 윈윈하려면 서로의 기대를 섞어야 한다. 하지만 남북이 서로 메아리 없는 제의와 담론만을 내놓는다면 결과는 예측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설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하자는 제의를 덜렁 내놓았던 박근혜 정부는 어떠한 대북 후속제의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대통령 스스로 북한의 잇단 제의를 “선전공세”라며 의미를 내리깎았다. 철통같은 안보태세를 강조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1~3월 초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국방부의 정세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국정원발로 알려진 ‘2015년 자유 대한민국 체제 통일설’의 연속선상이기도 하다. 대통령은 대화와 교류협력을 통해 지속가능한 평화를 만들어 나가고, 강화된 대북 인도적 지원으로 남북 주민 간 동질성을 회복하겠다는 말을 2년째 반복하지만 빈말에 머물고 있다. 되레 정체불명의 ‘통일대박론’이 운동장 구석의 회오리 바람처럼 맴돌고 있을 뿐이다.


뉴욕타임스스퀘어 '통일은대박이다' 광고판(출처: 연합뉴스)


견고한 대오로 질주하는 박근혜 정부의 ‘안보열차’를 당장 멈추게 할 길은 없어 보인다. 남북의 엇갈림은 올봄에도 한반도에는 전쟁담론이 무성할 수밖에 없게 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올해 남북관계의 1막이 가파른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잠정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까닭이다. 어차피 “미군 없이는 국토방위가 어렵다”는 대한민국 국방부 입장에서 한·미 합훈이 절실할 것임을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도 약간은 있다. 하지만 엄동설한 속에 봄을 기다리듯이 올 하반기부터 펼쳐질 2막에 대한 기대만큼은 쉽게 포기할 일이 아니다. 


북한이 장성택 처형 이후 내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도발할 조짐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한·미 양국군이 2월 말부터 시작할 올해 합훈에서 얼마나, 어떻게 핵전력 시위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난해처럼 B52, B2 전폭기와 핵잠수함 등 핵전력을 공개적으로 전개한다면 북한은 격렬한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북한을 흔들어댐으로써 자칫 ‘1~3월 북한 도발설’을 구현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외교안보 고위당국자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안보논리를 강조하며 북한을 자극하면 긴장지수는 급상승할 것이다.


분단 한반도의 현실은 늘 전쟁과 평화 사이의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이를 평화 쪽으로 좀 더 끌어당기는 것이 지도자의 책무다. 올해 남북관계의 2막은 6월 지방선거 뒤에나 열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때 가서 정치적 요소를 덜어낸 담백한 대북 제의를 내놓고 남북관계를 풀어가려면 강 대 강의 궤도에 진입하려는 지금부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선 북한의 평화 제의를 댓바람에 백안시했던 경직성을 누그러뜨려야 한다. 한·미 합훈을 예정대로 진행하더라도 최대한 조용히 치러야 할 필요가 있다. 전쟁 위협을 하면 전쟁 위협한다고 비난하고, 평화 공세를 하면 위장된 평화 공세라고 되받으면 도대체 언제 북한과 마주 앉아 지속가능한 평화를 도모하겠다는 것인가. 


‘통일대박론’을 두고 손은 강 건너 초원을 가리키면서 정작 발은 강물에 담글 생각이 없는 모순에 비유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분단의 시원에서부터 흘러온 강물에는 진흙은 물론 오물도 섞여 있다. 그 구정물에 몸을 담그고 건너갈 자세가 안된 자, 감히 통일을 논하지 말 일이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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