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한반도 칼럼

이산상봉, 일회용 카드가 아니다

by gino's 2014. 2. 17.

경기 파주군 탄현면에 가면 실향민 전용 공동묘지가 있다. 정식 명칭은 동화경모공원으로 풍광이 그럴듯하다. 한강 하류와 임진강이 몸을 섞어 황해로 흘러들어가는 출발점이다. 계단식, 평면식 묘역이 조성돼 공동묘지라기보다는 공원 같은 푸근함을 준다. 1993년 처음 문을 열 때만 해도 허허벌판에 덜렁 놓인 이질적인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는 영어마을 파주캠프와 헤이리가 인접해 들어서 주말이면 제법 북적인다. 출생지가 휴전선 이북 지역이라야 묻힐 수 있다. 실향민들이 오랜 타향살이 끝에 마지막으로 누리는 호사라면 호사다. 이를 두고 일종의 특혜라고 할 필요까지는 없다.



야생동물도 멸종 위기에처했다면 보호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광복 이후 및 한국전쟁 와중에 월남한 이북 출신 인구는 280만명에 달한다지만 2005년 인구조사에서 이산가족이 있다고 답한 북한 출신 실향 1세대는 16만1605명이었다. 지난달 말 현재 대한적십자사(한적)에 등록한 이산가족 생존자는 7만1480명에 불과하다. 지난해 말 현재 2만6000여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그나마 휴전선 이남의 이북 출신 인구를 늘려주고 있을 뿐이다. 80만명에 육박하는 다문화가정과 비교해도 마이너리티 중에 마이너리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산가족 찾기 명단 확인하는 실향민(출처; 경향DB)


2004년 취재기자 신분으로 본 이산가족 상봉행사장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의외로 눈물이 적었기 때문이다. ‘마른 상봉’이라는 신문 헤드라인이 나올 정도였다. 부모자식 간의 수직상봉이 희귀해지다보니 형제, 친척들과 만나 10분 정도 젖은 재회를 하다가 서로 가져온 가족사진을 나눠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마른 상봉이 이어졌다. 구순의 노모가 아들을 만나는 수직상봉이 있었지만, 그리움도 반세기 이상 지나면 화석처럼 변한다. 치매에 걸린 남의 노모는 휠체어에 앉아 퀭한 눈빛으로 낯선 남자를 바라보고, 장성한 북의 아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20대에 헤어져 반세기를 홀로 넘긴 아내는 칠순의 남편을 만나기 전날 밤 오줌을 지렸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흘렀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남과 북의 기막힌 이산의 현실을 바라보는 남북 당국은 철저하게 정치적이었다. 한적은 1956년 10월 조선적십자 중앙위원회의 이산가족 접촉 제안을 묵살했다. 7·4공동성명에 앞서 1971년 8월 첫 남북 적십자회담이 열렸지만 첫 이산상봉행사는 14년 뒤에나 열렸다. 그렇게 분단의 연대기가 깊어가면서 이산가족의 한은 화석으로 굳어져갔지만 남북 당국은 민족과 국가를 팔면서 흥정만을 벌여왔다. 수십년째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행사·고향방문을 놓고 왈가왈부했지만 결론은 늘 현실정치의 필요에 따라 내렸다.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산상봉 행사는 더 이상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상봉 행사가 잦아지다 보니 생긴 현상이었다. 일간지에 사진 몇 장에 작은 기사가 딸리는 정도로 보도가 축소됐다. ‘쌀은 당국 간 회담용, 비료는 이산가족 행사용’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산가족이 아닌 일반 국민들은 많은 경우 무관심하거나, 상봉행사 성사를 위한 남측 당국의 저자세 대북협상에 비판적이었다.


남북은 이번에도 정치적 의도를 섞었지만, 나쁘지 않은 첫걸음이다. 동상이몽 속에 접점을 찾았을지언정 더 큰 걸음을 내디디는 디딤돌이 될 수 있다. 금강산 상봉행사가 4년 만에 다시 열린다. 북한은 한·미 합훈과의 연계 주장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지난해 2월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폐쇄와 최근의 장성택 처형에 이르기까지 국제적으로 몰린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라고 볼 수 있다. 북이 어떠한 속셈에서 ‘통 큰 용단’을 내렸던 간에 중요한 사실은 이제 공이 남쪽으로 넘어왔다는 점이다. 상봉의 정례화와 생사확인·서신교환의 오랜 숙제를 재개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엉뚱한 곳에 DMZ 세계평화공원을 만들기보다는 기왕에 완성된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와 지리적으로 연계시키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산가족 문제를 서로 정치적 필요에 따라서 한번 쓰고 버리는 카드로 활용한다면 남북 지도자들의 업보는 더욱 커질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오래된 반인도적 범죄가 아니겠는가.



김진호 선임기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