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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선군정치의 국제화

by gino's 2014. 5. 19.

바야흐로 군인들의 세상이다. 북한의 선군(先軍)정치가 휴전선을 건너와 박근혜 정부의 선군인사를 낳더니, 이제는 국제화하는 양상이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최근 무엇이 불안한지 군 수뇌부를 또 갈아치웠다. 민간당료 최룡해를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 선대의 선군정치와 결을 달리하는가 했더니 군을 다시 군 전문가 손에 넘겼다. 장성택 처형 이후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올랐던 최룡해 대신 황병서를 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추측의 대상일 뿐이다. ‘(포병) 구분대의 싸움 준비’를 잘하라는 것인지, 최룡해 한 사람에게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으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성 여부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다. 하지만 잦은 군 수뇌부 교체는 분명 안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 선군인사의 정점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바쁘다. 세월호 침몰 따위의 재난 사태를 컨트롤할 여유는 당연히 없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에 몰두하기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통일 대박’까지 추수하려면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국방부는 어느 부처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무엇보다 섬뜩한 말을 자주 내놓는다. 지난해 말부터 김관진 국방장관이 퍼뜨린 ‘1~3월 북한 도발설’이 그야말로 ‘설’로 끝나자, 이번엔 김민석 대변인이 나서 “(북한군은) 4월30일 이전에 (적들이 상상도 못할) 큰 한 방을 준비하고 있다”는 위기설을 살포했다. 5월에는 “북한은 없어져야 할 나라”라는 낡은 신상품을 출시했다. 2008년 미국 대선 와중에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가 내뱉었던 “북한은 절멸(extinction)시켜야 할 나라”의 피동형 패러디다.

군이 말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말 서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입을 통해 내년 말로 합의됐던 전시작전통제권 이양을 재연기한다는 확약을 받았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기 위한 킬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가 갖춰질 2020년까지 전작권 이양 시점을 논의조차 안 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주한미군은 ‘졸업을 거부하는 대학생(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같은 한국군을 위해 미 2사단을 한·미연합사단으로 개편, 한강 이북에 계속 주둔할 방안을 마련 중이다.

2차 남북 당국간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 수석대표들이 전체회의를 하고 있다(출처 :연합뉴스)


아베 내각은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 속에 지난 15일 집단자위권 행사 추진을 공식 선언했다.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는지 이젠 한·미·일 간 군사정보 교환 시스템의 변형 구축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로써 한·미 동맹이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로 새 자리를 잡는 과정에 본격 진입하게 됐다.

갈등을 총과 대포가 아닌, 대화와 협상으로 푸는 것을 업으로 하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달 초 방미 길에 ‘김관진식 강성발언’을 한 무더기 쏟아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제재는) 견딜 수 없는 무게의 철모가 될 것”이라는 등 다양한 표현능력을 발휘했다. 학자 출신 통일부 장관은 여전히 학자 활동에 열심이다. 올가을 세계북한학 학술대회 개최를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 6자회담 특사를 지낸 성 김 주한 미국대사의 후임으로 국방장관 비서실장과 한·미·일 3자 국방회담(DTT) 수석대표를 지낸 마크 리퍼트가 내정된 것은 작금의 한반도 정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 등 지난해 말 장성택 처형을 앞두고 삼지연에 모였던 이른바 북한의 신실세들이 잘나가고 있지만 유독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의 근황만이 북한 매체 보도에서 사라진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남북대화와 6자회담의 주역들이 사라진 자리에 군사전략가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좌들이다.

북한이 연내 4차 핵실험을 한다면 이후 진행될 시나리오는 예상 가능하다. 장거리 로켓 발사-안보리의 대응-핵실험-안보리의 추가 대응 수순이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남북이 험악한 군담(軍談)을 주고받고, 동북아 각국이 군사전략에 코를 묻고 있는 현 상황이 초래할 결과는 전혀 예상 가능하지 않다. 북한 내부의 심상찮은 움직임도 불확실성의 지수를 높인다. 21세기 한복판에 한반도는 철 지난 냉전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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