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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한반도 칼럼

벚꽃 엔딩

by gino's 2014. 4. 14.

벚꽃이 지고 있다. 이례적으로 함께 피었던 개나리, 진달래, 목련도 더불어 꽃잎을 떨군다. 어느새 라일락 세상이다. 올해 한·일 간의 ‘사쿠라 전쟁’에서 승자는 한국이었다. 기상관측 이래 처음으로 3월 마지막 주 고온이 계속되면서 꽃망울을 조산했다. 도쿄 히비야 공원보다 여의도 윤중로가 먼저 꽃비를 흩뿌렸다. 포토맥 강 주변을 하양, 분홍으로 뒤덮는 워싱턴의 체리블로섬 축제 역시 이상 한파로 늦게 시작됐다고 하니 서울은 개화시기에서 단연 앞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꽃이 피고 지고 있지만, 한반도의 봄은 여전히 봄이 아니다.

올해도 화신(花信)에 앞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의 포성이 봄의 서곡을 울렸다. 북한의 군사적 대응과 맞물리면서 험악한 불협화음을 연주했다. 그 와중에 100발의 북한 포탄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자, 300발의 남한 포탄이 북을 향해 발사됐다. 한·미 공군은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끝난 뒤에도 오는 25일까지 103대의 군용기가 동원된 역대 최대 규모의 맥스선더 훈련을 이어간다. ‘언덕 너머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볼 수 있는 수준’(제임스 하디 제인스 디펜스 매거진 에디터)이라는 무인기 3대가 한반도 남쪽에서 야기한 과장된 잡음도 있었다.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 일본발 역사도발, 남북 간의 포연이 뒤섞여 봄의 시계(視界)는 혼탁하기만 하다.

한반도 외교안보 기상도에서 봄소식은 늦게 온다. 늘 벚꽃이 진 다음에나 조짐을 보인다. 올해도 한·미 합훈이 끝나는 이달 말 즈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공교롭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일본, 한국 순방 시기와 겹친다. 핵과 미사일을 움켜쥐려는 김정은의 북한이나, 과거사를 부정하면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아베의 일본은 박근혜 정부가 좋건 싫건 직면해야 할 양대 장벽이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는 대북 관계에서건, 대일 관계에서건 별다른 봄소식을 가져오지 못했다. 북한의 대화제의로 물꼬를 트는가 했던 남북대화는 수석대표의 격을 둘러싼 기싸움 탓에 가을에 접어들어서나 개성공단 재가동을 성사시켰다.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라는 국내정치 수요에 매몰됐던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거듭된 망언 탓에 어떠한 관계개선의 실마리도 잡지 못했다. 올해도 봄소식을 단언키는 어려운 상황이다.

통일 구상 밝히는 박 대통령-1 (출처 ;연합뉴스)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에서 내놓은 또 하나의 구상에 대해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일축했다. 이미 4차 핵실험 강행 의도를 공개적으로 흘려놓은 상태다.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한 고노담화의 계승 의지를 밝히는가 했더니,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의 초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킴으로써 연례 교과서 도발을 한층 강화했다. 오늘부터 한·일 국장급 협의가 열리지만 외교부가 위안부 협의만을 의제로 발표한 데 반해 일본 외무성은 ‘여러 과제’를 강조해 시작 전부터 엇갈림을 보인다. 오바마 순방에 앞서 양자간 갈등지수를 낮춰보려는 한·일 정부의 성의표시에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양국 간 핵심현안을 놓고 사실상 처음 마주앉는 자리인 만큼 기대를 가져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남북 간에도 한·미 합훈과 북한의 대응 군사훈련이 끝난 뒤에는 모종의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을 공산이 크다. 북한은 드레스덴 구상이 흡수통일 의도를 내비쳤다는 점에서 비난을 퍼부었지만 남북대화 자체를 봉쇄하고 있지는 않다. 박근혜 정부 역시 국내외적으로 공표한 드레스덴 구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라도 북측과 고위급 대화를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종전처럼 ‘국민 감정과 국제적 기준’이라는 모호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대통령 봉급을 받는 동안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현안 해결에 나설 시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또 한가지.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해 상대방의 우선적인 변화만을 고집하며 북한과 일본을 백안시하는 비전략적 관망으로 일관한다면 ‘봄’은 더 멀어질 뿐이다. 지난해처럼 봄을 건너뛰고 곧바로 여름을 맞을 수도 있다. 모기를 보고 칼을 빼어든 형국이라며 국내외 비아냥을 받았던 무인기 소동과 같이, 국민을 불안케 했던 해프닝 역시 곤란하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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