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논산훈련소 병영의 침상 머리맡에는 영점표적지가 붙어 있었다. 눈 운동보다는 영점사격 훈련용이었다. M16소총의 가늠쇠와 가늠자를 정렬시키는 영점사격은 녹록지 않았기에 평상시에도 눈에 힘을 주어 초점을 잡는 훈련이 필요했다. ‘레이저 김’이라고 불리는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보면 그 시절의 영점훈련이 떠오른다.
참여정부의 합참의장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부활하더니 명실공히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자리를 꿰찼다. 화려한 이력을 가능케 한 배경에는 ‘레이저 김’이라고 불리는 그의 눈빛이 인사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준 것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김관진 실장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에 국방장관에 취임해서인지 유독 호전적인 발언을 자주 내놓았다. “(북한의) 도발원점은 물론 지원 및 지휘세력까지 타격하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의 강성발언이나 그의 레이저 눈빛을 접한 북한 군부의 간담이 서늘해졌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자국민을 불안케 하는 데는 분명 효력이 있었다. 올해 들어서는 ‘1~3월 북한도발설’ 등을 내놓았다. 왜 그럴까. 나는 그 이유를 그만의 ‘영점표적지’ 때문이라고 본다.
2010년 12월 취임 직후부터 국방장관 집무실에 적장의 사진을 붙여놓았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김영춘 당시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북한군 4군단장 시절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김격식 총참모장의 사진을 응시했다고 한다. 그의 적장 노려보기는 두 가지 점에서 난센스였다. 장수가 아닌 장관 자리에서 적장의 생각을 읽겠다는 생각은 번지수가 틀렸기 때문이다. 또 굳이 격을 따지자면 북한 군의 1인자인 총정치국장의 사진을 붙여놓아야 했다. 1년 전 칼럼을 통해 지적한 사실들이다.
김관진 안보실장이 박근헤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출처: 경향DB)
다행히 그의 집무실 영점표적지는 다소 진화한 듯하다. 당분간 그가 겸하게 된 국방장관 집무실 벽에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고 한다. 그 사이 북한군의 구조와 특성을 파악했음을 말해준다. 청와대의 안보실장 발탁 사유처럼 ‘국가안전보장회의 및 외교안보장관회의 구성원으로 외교, 통일 분야 정책결정에 참여해온 경험’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태산을 울릴 듯한 그의 호언은 종종 의미가 줄어들거나 허언으로 그친 적이 적지 않다. 도발원점 및 지원·지휘세력까지 타격하겠다는 결기는 지난해 봄 한·미 국지도발대비계획으로 구체화됐다. 하지만 미국과의 합의를 거치기로 해 전시는 물론 북한의 평시 도발에도 우리 스스로 판단할 권리를 반납했다. 2007년 6월 참여정부의 합참의장으로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단계적 이행계획서에 합의했던 그가 기어코 전작권 전환을 기한없이 연기키로 했다. 입과 눈빛으로는 강경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입과 눈에 힘을 더 주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영점표적지가 병사에게 필요하듯이, ‘적장 노려보기’는 야전 지휘관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국가안보실장 자리에 오른 뒤에도 ‘영점’을 바라보거나 강성발언을 내놓는다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일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 미국과 냉전 이후 처음으로 크림반도에서 맞짱을 떴던 러시아가 중국과 군사·에너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과도 손을 잡았다. 아베 신조의 일본은 집단자위권 행사를 추진하는가 싶더니, 성동격서 식으로 북한과 납치자 합의를 이뤄냈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열렸던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는 중국과 미·일의 아시아 전략이 맞붙었다. 북한은 4차 핵실험을 공언한 지 오래다. 복잡다단한 외교안보 환경 속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실장의 시야는 광폭이 돼야 한다. 눈빛은 풀고, 말은 조심스레 하더라도 머리에 힘을 주기 바란다. 그의 군 주특기 530의 작전마인드는 더더욱 금물이다. 외교안보부처 간의 소통 및 조율은 물론 주변국의 동향을 응시하는 다초점렌즈를 권한다.
더구나 그의 새 집무실이 있는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는 청와대가 홍보동영상으로 널리 알린 더 큰 레이저 눈빛의 대통령이 있지 않은가. 한 직장에 두개의 레이저 빔은 에너지 낭비다.
김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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