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하게 손 내밀어봤자 트럼프에 이용만 당한다”
취임과 동시에 전세계를 혼란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탓에 각국 지도자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연대가 희박했던 이슬람권은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제한 조치 이후 분열양상을 보이고 있고, 영국과 멕시코, 호주, 캐나다 등 미국의 우방국들은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했다.
메카와 메디나 등 ‘두개의 신성한 이슬람 도시들’의 수호자인 사우디의 살만 국왕은 지난 29일 트럼프와 통화를 했지만 대화내용을 일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역시 트럼프의 조치에 대해 어떠한 발언도 내놓지 않고 있다. 57개 회원국을 아우르며 이슬람권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이슬람협력기구(OIC) 역시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 7개국 가운데 이란과 이라크 정부 만이 보복조치를 다짐하며 공공연하게 반발하고 있을 뿐이다.
트럼프의 예외적인 조치에 예외적인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단합하지 못하는 것은 이슬람권의 오랜 문제이기도 하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움마(Ummah·이슬람권의 초국가적인 공동체)”를 강조하지만 실상 자국의 편협한 국익에 안주하면서 입에 발린 소리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의 라미 후리는 뉴욕타임스에 “무슬림 지도자들은 각각 자국 내에서 강한 정통성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뭉치지 못하고 흩어지는 기존의 모순에다가 트럼프가 갈라놓은 분열이 겹쳤다는 분석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슬람권 지도자들 태도는 무엇보다 트럼프가 공언한 더 큰 악재를 앞두고 일종의 ‘태풍 전의 고요’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문제와 미국이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와 보조를 취하는 문제등 이슬람권의 불안한 균형을 깨드리는 조치가 구현된다면 무슬림 입국 금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은 충격파를 던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달 27일 저녁 무렵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그런대로 성공적인 첫 정상회담을 갖고 워싱턴을 떠난 메이 총리는 10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터키를 향해 떠났다. 그가 앙카라에 도착할 즈음, 트럼프가 시리아 난민과 이슬람 7개국 출신 국민들의 미국 방문을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이 화근이 됐다. 메이가 “미국의 정책은 미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영국인들은 총리 관저가 있는 다우닝가로 몰려가 반발시위를 벌였다.
한 전직 외교관은 메이의 미국 방문을 ‘굴욕적인 평화’라고도 비난했다. 트럼프에게 국빈자격으로 영국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 것에 대해 트럼프의 방문을 거부하는 인터넷 청원에 서명한 영국민은 150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 대통령과의 가까운 관계는 미국의 우방국들은 물론, 적대국에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진다. 특히 영국과 캐나다, 일본, 멕시코등 주요 우방국 지도자들은 자칫 불나방과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이들 국가 지도자들에게 정중하게 대했지만, 곧바로 뒤통수를 때리기 일쑤기 때문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가장 곤경에 처한 지도자 중 한명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다.
지난해 트럼프를 멕시코에 초청했던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메이가 당한 것과 유사한 배신을 두번이나 당했다. 트럼프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및 멕시코 예산으로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방침 탓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내 지지가 낮은 그가 할 수있는 조치는 트럼프의 국경장벽 건설 계획이 발표한 뒤 예정됐던 정상회담을 취소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대미관계의 중요성을 무시하지 못한 듯 취소 발표 다음날 아침 1시간 동안 트럼프와 전화통화를 해야했다. 멕시코 내에서는 이를 두고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분석이 제기됐다.
그럼에도 다음달 초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을 앞둔 아베는 트럼프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 일본 내에서 빈축을 사고 있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 역시 “다른 나라(미국)의 정책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한 뒤 국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캐나다 원유를 미국으로 들여오는 키스톤 XL 파이프라인의 건설을 강행할 것이라는 트럼프의 발표 탓에 자국내 환경보호주의자들과 석유업자들 사이에서 불편한 입장에 처해 있다. 트럼프의 미국을 성급하게 비난하는 대신, 미국 경험이 있는 각료들로 내각을 재편해온 그로서는 “미국과 가까이 지내는 것은 코끼리와 함께 자는 것과 같다”는 자신의 아버지인 피에르 트뤼도 전총리의 충고를 되씹고 있음직하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트뤼도 전총리의 말은 코끼리가 아무리 착하고 친밀하게 굴더라도 조금만 움직여도 캐나다가 다칠 수밖에 없는 사이임을 이리 표현했다.
어설프게 트럼프에게 먼저 손길을 내밀었다가 경을 치르고 있는 이들 지도자들의 경험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제레미 사피로 국장은 “트럼프는 (대외)관계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니라 힘과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있다”있다면서 “백악관으로 성급하게 달려가 친선의 손길을 내밀어봐야 이용만 당할 뿐”이라고 말했다. 트뤼도 전 총리의 충고대로 초강대국 미국과의 관계를 포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성급하게 다가갈 수도 없다는 게 우방국 지도자들의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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