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불신하는 대통령과 정보기관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보기관들이 ‘눈먼 증오’를 갖고 정권을 흔들고 있다”면서 단속에 나섰지만 정보기관들은 트럼프 주변 인물들의 대 러시아 이적 혐의와 관련한 정보를 언론에 누설(leak)하거나 민감한 정보를 대통령에게 차단하는 등 항명을 그치지 않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당장 미국 정보기관 공동체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다. 트럼프 측근들과 러시아 간의 의심스러운 관계와 백악관 발 정보누설이 계속되면서 미국 정보기관들은 대통령에게 민감한 정보를 차단하고 있다고 미국 언론은 전한다. 자칫 가상적국인 러시아로 정보원을 비롯한 기밀이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6일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정보기관 종사자들의 (정보차단)결정은 대통령과 정보기관 공동체 사이에 악화되고 있는 깊은 불신은 물론, 트럼프팀과 러시아 정부와의 접촉 때문”이라고 전했다. 연방하원 정보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애담 시프 의원(캘리포니아)도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트럼프는 전날 언론과 정보기관을 싸잡아 비난하면서 “정보기관들이 자신을 흔들기 위해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 바 있다. 하지만 자신이 왜 플린의 사임을 수락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는 또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진짜 스캔들은 정보기관들이 기밀정보들을 사탕 나눠주듯 불법적으로 유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가 정보기관들을 불신해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는 당선자 신분이던 지난 1월11일에도 “정보기관들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과 관련한) 가짜뉴스들을 결코 대중에 흘려서는 안된다. 우리는 지금 나치독일에 살고 있는 것인가”라면서 정보기관의 분석의 정확성을 의심한 바 있다. 측근들과 자신의 ‘러시아 커넥션’을 털어놓는 대신에 정보기관들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면서 역으로 그자신이 정보기관들로부터 불신임을 받고 있는 셈이다.
수차례 있었던 플린 과 세르게이 키슬략 미국 주재 러시아 대사와의 통화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임기 말인 지난해 12월에 이뤄진 만큼 통화내용이 두 정보기관의 전·현직 관계자들을 통해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냐티우스에게 처음 전달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포린폴리시는 그러나 정보기관들의 편에 섰다. 트럼프 백악관 당직자들 보다는 정보기관들이 자신들의 특권과 권력을 사용하는 데 훨씬 더 명석하고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라는 까닭에서다.
대통령을 겨냥한 미국 정보기관들의 항명을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정권안보’가 아닌 ‘국가안보’를 존재의 이유로 삼는 정보기관의 종사자들이 본연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미국 정보기관 종사자들은 그러나 트럼프 취임 이후에도 국가안보 위협이나 잠재적 음모와 관련한 중대한 정보를 차단한 적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의 ‘이유 있는 항명’은 국가 정보기관이 선거판에서 여권후보의 당선을 위해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에 시달리는 동아시아의 한 분단국에선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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