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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6주가 지났지만, 틸러슨은 여전히 사장님(CEO) 스타일

한반도, 오늘

by gino's 2017. 3. 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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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방한 첫 일정으로 판문점을 방문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왼쪽)의 말을 듣고 있다. 창밖에선 북한군 병사가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도쿄에선 활짝 웃고, 서울에선 굳어 있었으며, 베이징에선 미소를 지었다. 지난주 일본·한국·중국 순방을 하고 돌아간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첫 아시아 순방이 던진 인상이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에 대한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면서 더욱 강력한 제재와 선제타격론을 공론화했다. 동맹은 없었다.
서울에서 보인 오만한 태도, “무슨 이런 동맹이 있나” 

그의 순방이 주목을 끈 것은 백악관에서 지난달 중순부터 하고 있다는 대북전략의 검토가 사실상 마무리단계라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내부 검토를 끝낼 무렵 관련국들의 의견을 참조하는 것이 통상적인 강대국의 정책결정 수순이다. 틸러슨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말을 여러가지 표현으로 내놓았다. ‘북한의 미사일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포괄적인 능력의 개발’ ‘완전히 다른 방법’ ‘(대화가 아닌)다른 형태의 노력들’ ‘더 많은 횟수의 행동을 동반한 몇개의 조치들’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전략을 감지할만한 뚜렷한 단서는 내놓지 않았다. 다음달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골격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또다른 강대국이다. 한반도 사안이 강대국 정치의 매커니즘에 포획되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짙다. 틸러슨 장관이 1박2일 동안 서울에서 보여준 태도는 향후 미국이 북한 문제에 대응함에 있어 한국의 의도를 얼마나 존중할 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사점을 던졌다. 국무부 장관 취임 6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다국적기업 최고경영자(CEO) 스타일임을 또렷하게 각인시킨 계기이기도 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윤병세 외교부장관을 바라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2일 저녁 서울시내 모 호텔. 오산 공군기지를 통해 방한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한·미 국방장관회담에 이어 그날 밤 한민구 국방부장관 초청으로 만찬을 들었다. 와인을 곁들여 1시간30여분 동안 진행된 만찬에는 양측에서 각각 7명씩 참석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한다. 공식 만남이라기보다는 오랜 전우들의 만남 같았다는 후문이다. 21세 소위 때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해병 4성장군으로 군문을 떠나기 전에 수차례 방문했던 한국을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의 대한 안보공약을 거듭 확인한 그의 방한은 1박2일 일정으로 짧았다. 하지만 럭비공 같은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동맹국의 불안심리를 해소하는 데 충분했다. 

8·18 도끼만행사건의 현장에서 북한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고 했을까 

지난 17일 역시 오산 공군기지에 착륙한 틸러슨의 행보는 사뭇 달랐다. 곧바로 헬기편으로 비무장지대(DMZ) 최일선의 미군부대 ‘캠프 보니파스’를 찾은 뒤 판문점 T2회의장에서 굳은 표정의 사진을 남겼다. 캠프 보니파스는 1976년 8·18도끼만행 사건 당시 희생된 미군 대위의 이름을 기려 지은 캠프다. 2002년 북한을 ‘악의축’으로 규정했던 조지 부시 역시 판문점으로 날아와 일촉즉발의 전쟁 직전(데프콘 2 상황)까지 당시 사건에 관심을 보인 바 있다. 판문점을 방문해서 틸러슨이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공식만찬을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들로부터 어떤 초청도 없었기 때문”이라면서 “(어쨋든)저녁은 먹었다”고 무표정하게 내뱉었다. 미국 언론 중 유일하게 수행취재를 허용한 인디펜던트저널리뷰(IJR)와의 인터뷰에서다.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에 예외적인 초점을 두는 것 같다’는 질문에는 “한국은 (대통령 탄핵 때문에)정부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밥을 같이 먹는 거와 차원이 다른 결례가 아닐 수없다. 국방장관과 국무장관이 바뀐 것 같다는 인상기가 한국 내에서 나오는 까닭이다. 일각에선 “어떻게 동맹이 그런가”라는 탄식까지 나온다.

일본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6일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br />도쿄/AP연합뉴스

일본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6일 도쿄의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도쿄/AP연합뉴스


틸러슨의 아시아 순방은 위기관리를 위한 외교무대에서 첫 데뷔였다. 지난 달 말 장벽건설 문제로 불화를 빚고 있는 멕시코 방문에서는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주무장관인 존 켈리 국토안보부장관에 집중됐었다. 하지만 막후에서 트럼프의 좌충우돌 외교노선을 정상궤도로 돌려놓는 역할을 해온 것으로 관측됐다. “하나의 중국 정책에 연연하지 않겠다”던 트럼프의 대중 적대시 태도는 베이징 대화와 협력을 강조한 틸러슨의 태도로 반감됐다.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문제가 일단 잠잠해진 것에도 틸러슨이 지문을 묻힌 것으로 미국 언론은 분석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트럼프의 그늘’에서 처음 나온 그의 본모습은 여전히 엑손모빌의 사장이었다. 그 열쇗말이 경비절감(cost down)과 언론을 등한시하는 태도였다. 대외정책, 특히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이 언론과의 상호작용없이 나온다는 자세는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반세기 만에 처음 보인 태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경비절감이야” CEO 본색 

틸러슨은 아시아 순방 길에 통상 20여명의 국무부 출입기자들의 수행취재를 거부하고 IJR기자 한명만 대동하는 파격을 보였다. 매일 국무부 기자실로 출근하는 기자도 아니었다. 그 이유에 대해 “믿을 지 모르지만 우리는 돈을 절약하고 있다”고 답했다. 

국무부 장관이 전용기에서 기자들과 접촉하는 것이 전통이지만 “오해가 없기를 바라지만 나는 비행기에서 일을 해야 한다”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강조했다. “개인적으로 언론의 초점을 받는 인물이 아니다. 필요하지도 않다”고도 했다. “(엑손모빌 간부로) 25년간 (언론관계가)외교적으로 성공적이었다”면서도 “내 스타일을 언론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론의 필요에 자신이 맞추기 보다는 언론이 자신의 필요에 맞춰달라는 주문은 전형적인 대기업 보스의 특성이다. 배니티페어는 언론에 대한 틸러슨의 과묵함에 대해 “엑손모빌 CEO라는 직전 직업의 연장”이라면서 “(CEO 시절)자신이 움직일 때마다 기자들이 따라다닌다던가,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과 회의, 보고, 결정에 대해 새소식을 들려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올해 예산에서 국방부 예산을 10% 증액한 데 반해 국무부 예산을 28%(100억달러) 삭감했다. 정상적인 국무장관이라면 반발했겠지만, 틸러슨은 “더 적은 돈으로 훨씬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론 군사적 충돌이 적을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삭감된 예산의 상당부분은 “더 많은 파트너십과 미국의 동맹국들과 다른 나라들의 더 많은 기여”로 보충할 계획이다. 효율과 거리가 가장 먼 국제개발처(USAID)의 업무에도 효율을 강조했다. 

이미 1000여명의 국무부 본부직원들이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명령에 반해 연판장을 돌렸고 상당수가 자진 사직을 했지만, 예산감축에 따른 인원감축도 불가피해보인다. 하지만 경비절감과 인원감축 역시 CEO 출신 틸러슨에게는 익숙한 과제다. 엑손모빌은 2001년 9만2500명이던 직원을 2015년 7만3500명 선으로 줄였다. (스타티스틱스 포털) 1975년 엔지니어로 입사해 그가 CEO를 지낸 11년(2006년 1월~2017년 1월)이 상당 부분 겹친다. 현재 국무부 직원은 본부 1만1000명에 해외공관 및 지사 1만4000명, 외국 현지직원 4만5000명을 합해 비슷한 수준이다. 그가 국무부 장관을 마친 뒤 직원수가 어떻게 변할지도 두고볼 일이다.

중국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공동기자회견을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국에선 시종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베이징/UPI연합뉴스

중국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18일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공동기자회견을 앞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다. 중국에선 시종 대화와 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베이징/UPI연합뉴스


‘진정한 미국 외교의 사령탑’인지도 두고봐야

트럼프 행정부들어 미국 언론은 물론 각국 정부가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과연 누가 ‘트럼프의 귀’를 잡고 있느냐다. 비정치적으로 임명된 매티스 국방장관의 경우 국가안보보좌관과 국토안보부장관, 합참의장 등 역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군 후배들과 진영을 이루고 있지만 틸러슨은 혼자다. 틸러슨이 사장이라면, 실세 사장인지 바지 사장인지 분명치 않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이 싫어하는 ‘기관’으로서의 국무부보다는 백악관 웨스트윙의 ‘작은 국무부’를 선호한다는 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트럼프 취임을 전후해 10여차례의 정상간 회동 일정과 내용을 조율한 것은 트럼프의 맏사위이자 백악관 선임고문인 재러드 쿠슈너였다고 한다. 실제로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과정에서 틸러슨이 배제된 경우는 적지 않았다. 트럼프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2개의 국가정책을 재고하겠다는 발표를 할 때 틸러슨은 독일행 비행기에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도됐다. 예산감축은 트럼프가 틸러슨과 국무부의 역할을 축소한다는 분명한 신호다. 

틸러슨은 다만 유능한 기업인 출신답게 회장(트럼프)에게 보고하기 전에 핵심참모에게 먼저 설명하는 노하우를 보여주고 있다. 배니티페어는 틸러슨이 자주 쿠슈너를 찾아가 의논한다면서 그 이유로 “트럼프는 어쨌건 간에 쿠슈너의 의견을 다시 물어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틸러슨은 멕시코 방문에 앞서 쿠슈너와 함께 트럼프에게 보고를 했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만찬에도 쿠슈너와 나란히 참석했다. 그렇지 않아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 처한 한반도의 풍향을 가늠하기에 너무 힘든 미국 대통령에, 만만치 않은 미국 국무장관이 아닐 수 없다.

19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시 주석 뒤에 서 있다. 북핵 위기를 포함한 미·중 간 현안은 벛꽃이 필무렵 미국 플로리다주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열릴 양국 정상회담에서 굵은 갈래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AP연합뉴스

19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예방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시 주석 뒤에 서 있다. 북핵 위기를 포함한 미·중 간 현안은 벛꽃이 필무렵 미국 플로리다주 휴양지 마라라고에서 열릴 양국 정상회담에서 굵은 갈래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AP연합뉴스


“미국을 불안하게 보는 한국 정치인인들이 있다” 

 20여년 전부터 한반도 문제에 천착해온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 기자는 19일 ‘미디어 없는 세상을 바라는 렉스 틸러슨의 희망은 거품처럼 꺼질 지 모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디어 없는 세상은 미국이 글로벌 파워로 막 등장하던 윌리엄 맥킨리나 시어도어 루즈벨트 행정부의 존 헤이 국무장관이나 즐길 수 있었던 사치”라고 꼬집었다. “석유회사 사장으로 세계를 여행할 때는 개인적으로 언론인들이 필요없었겠지만, 지금은 필요하다”면서 지금은 3억2000만명(미국민)의 주주들을 대표하는 국무부 수장임을 상기시켰다. 그중 상당수는 틸러슨이 매일 매일 전세계를 상대로 한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이해를 갖고 있다.
틸러슨의 아시아 순방을 지배했던 이슈는 자칫 잘못 다루면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북한 핵문제였다. 생어는 한국 고위 당국자의 말을 빌어 “(틸러슨의 방한을 계기로)분쟁위협을 다루는 데 (대화를 통한 해결을 강조하는) 중국의 접근방식이 더 낫다고 보는 한국 정치인들이 있다”면서 “그 중에는 조만간 임시대선을 통해 한국 대통령이 될 사람도 1~2명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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