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키우던 진돗개 새끼들을 안아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이름을 ‘평화’ ‘통일’ ‘금강’ ‘한라’ ‘백두’로 지었다. 2015년 9월20일 청와대가 언론에 제공한 사진으로 연출한 흔적이 역력하다.
‘바니’와 ‘미스 비즐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키우던 스코틀랜드 테리어 강아지들이다.
바니는 특히 ‘대통령의 개(퍼스트독·First Dog)’로 지정돼 미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퍼스트독은 대통령의 가족을 퍼스트패밀리(First Family)라고 부르는 것에 착안해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그만큼 국민적인 애정이 담겨 있다.
부시 부부의 강아지 사랑은 백악관에 머물 때만 반짝했던 것이 아니다. 2013년 1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바니와 다음해 죽은 미스 비즐리를 잊지 못해 ‘조지 부시 기념도서관 및 박물관’ 홈페이지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추모하고 있다. 사진들과 동영상을 올려놓았다. 부시 부부는 이후 강아지를 키우지 않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미국인들의 생활에서 강아지는 단순한 애완견이 아니다. 가족의 일원이다. 퍼스트 독을 지정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대통령과 국민 간에 일종의 정서적 공감대로 퍼스트 독을 두는 것이다. 빌 클린턴 부부는 ‘버디’라는 이름의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을 키웠고 존 F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 이후 모두 16마리의 강아지를 키웠다. 버락 오바마 가족의 퍼스트독은 불임수술을 한 수컷 포르투갈 워터독 ‘보’였다. 같은 종의 암컷 써니와 함께 백악관의 재롱둥이들이었다.
클린턴 부부는 아칸소주 리털록을 떠나 백악관으로 이사하면서 버디를 입양했다. 빌이 성장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외삼촌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힐러리는 “버디가 집안에 들어오고 나서야 백악관이 편안한 집 같아졌다”고 술회했다. 역대 대통령들의 퍼스트 독과 대통령 가족들의 사연은 여전히 미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애완동물 박물관(www.presidentialpetmuseum.com)’도 있다. 1789년 이후 미국 대통령들의 애완동물 사진과 강아지들의 기념품 및 에피소드를 전시, 소개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 ‘정승 죽은 데는 안 가도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상간다’고 했던가. 주인의 강아지 사랑이 깊으면 백악관을 방문하는 각국 지도자들이 강아지 선물을 챙기기도 한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강아지 외교’의 선구자이다. 2008년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바니를 위한 선물을 챙기더니, 2012년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유메’라는 이름의 일본 토종개 아키타 암컷을 선물했다. 2016년 12월 일본에서 열린 러·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유메의 짝을 맞춰주기 위해 같은 아키타 종의 수컷을 선물하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동물애호가로 알려진 푸틴 대통령이 거절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다. 아키타는 일본 황실에서 사랑을 받던 일본 판 퍼스트독이다.
물론 모든 지도자가 강아지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7년 1월 러시아 휴양도시 소치에서 열린 독·러 정상회담장에서 푸틴이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의 ‘코니’를 풀어놓자 기겁을 했었다. 푸틴은 이후 “메르켈 총리가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사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애견을 회담장에 데리고 간 이유에 대해 “메르켈 총리에게 잘 대해주기 위해서”라고 말해 선의였음을 강조했다.
각국 지도자들의 애견은 부시의 경우에서 볼 수있듯이 현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주인가족과 함께 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강아지는 아니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2016년 7월 총리에서 물러나면서 기르던 고양이 ‘래리’를 관저인 다우닝가 10번지에 남겨두고 떠났다.
래리를 싫어해서가 아니었다. 총리관저의 고양이는 쥐를 잡는 ‘수렵보과관(Chief Mouser to the Cabinet Office)’으로 공식 임명된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총리관저의 마스코트 역할을 톡톡히 해온 래리는 공식직함 탓에 후임 총리인 테레사 메이에게 넘겨졌다. 영국은 1920년대부터 국가예산으로 고양이를 총리관저에서 키우고 있다.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들은 안다. 품안에 안긴 강아지와 눈을 맞추는 순간 하루 동안의 피로가 순식간에 풀어지는 느낌, 영혼이 편안해지는 느낌, 정 든 개가 세상을 떠나면 깊은 상실감에 장례를 치러주고 싶은 느낌을 말이다.
느닷없이 퍼스트독을 꺼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이 떠난 뒤 청와대에 사실상 버려졌다는 진돗개 9마리가 떠올라서이다. 다우닝가 10번지의 래리 처럼 국가의 애완동물이 아니다. 마땅히 주인이 돌봐야 하는 동물들이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이웃 주민들로부터 진돗개 ‘희망이’와 ‘새롬이’ 부부를 선물받았다. 암컷 새롬이는 모두 12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중 5마리는 분양했고 남은 가족이 9마리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2015년 성탄 이브에 산타 옷을 입은 사진을 공개하는 등 대통령의 이미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강아지 사진을 몇차례 공개했다.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의 반려견인 진돗개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로 선정하라면서 한진그룹 조양호 호 회장과 김종 전 문화체육부 장관을 스위스로 급파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강아지들을 홍보도구로만 삼았던 것 같다. ‘강아지 외교’는 커녕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각국에서 경악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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