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시걸의 글이었다. 시걸은 지난 23일 존스홉킨스 대학 한·미 연구소의 한반도 전문매체 38노스에 ‘틸러슨 잘못 읽기(Misreading Tillerson)’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의 최근 방한을 다룬 생어의 기사들에 대해 날선 비판을 가했다. 비판의 핵심 포인트는 과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끊고 선제타격이 포함된 다른 옵션을 구상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시걸은 “과연 틸러슨이 서울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에 대해) 대화를 배제(rule out)하고 선제공격을 강조(rule in)했는가?”라고 되물으면서 이러한 뉘앙스를 풍긴 생어의 잘못된 보도 탓에 잘못된 여론이 조성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생어는 결코 자신의 기사들을 경시하지 않는다”면서 생어의 건방진 태도를 반어법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온라인 설전에서 동원된 근거들은 생어의 기사들과 국무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틸러슨의 발언록 및 틸러슨의 한중일 순방을 수행취재한 인디펜던트저널리뷰(IJR)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주요 정책결정자의 발언록을 되풀이해서 뜯어보고 겹쳐보는 것은 북한 문제를 다루는 기자나 연구하는 학자나 필히 거쳐야할 과정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해석은 사뭇 달랐다.
틸러슨이 서울 다음으로 방문한 베이징에서 미·중 양국은 상호협력을 함께 강조했다. 유엔 안보리 제재를 이행하는 데 마음이 만났다(metting of minds)고도 확인했다. 다만 미·중 간에 뉘앙스는 분명 달랐다. 틸러슨은 지난 20여년간 북핵 해결 노력이 모두 실패했다는 데 초점을 둔 반면에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실패도 있었지만 성공도 있었다면서 “현지의 상황이야말로 바로 6자회담이 중단되고 다른 외교적, 정치적 대화 수단이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시걸은 마지막으로 틸러슨이 수행기자를 1명만 허용한 것에 대한 생어의 비난을 “뻔뻔하다”고 역비난했다.
30년 기자 경력의 생어 역시 침묵하지는 않았다. 생어는 다음날 시걸의 글에 대한 반박문을 38노스에 게재, 자신의 기사를 옹호했다. 생어는 틸러슨의 서울 메시지는 백악관의 대북정책 재검토의 일단이 처음 공개된 것이라면서 ‘최초’라는 점을 강조했다. 틸러슨의 메시지를 북한 대화단절 및 선제행동론, ‘전략적 인내’의 종식 등 3가지로 추린 뒤 “트럼프 행정부가 선제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처음 공표했다”는 자신의 기사의 요지를 소개했다.
하지만 틸러슨이 ‘선제행동’을 발설하지 않았다는 시걸의 지적은 피해나갔다. 생어는 그러면서 “새 행정부이고 새 정책결정론자들(players)인 만큼 우리는 알수없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전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했다. 시걸이 뻔뻔하다고 지적한 틸러슨에 대한 설교에 대해서는 “설교를 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빠져나갔다. 마지막으로 뉴욕타임스 및 38노스 독자들을 상대로 “나의 일은 트럼프 행정부의 단어들 속에서 무엇이 새로운지 설명하는 것”이라면서 “뉴욕타임스와 38노스 독자들이 (그런 관점에서)내가 서울에서 완수하려고 노력한 것을 판단해주길 바란다”고 두루뭉술하게 글을 맺었다. 굳이 승패를 가르자면 시걸의 압도적인 판정승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서부터 말년 외교부장관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위기의 대책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만을 강조하고 있다. 한반도 위기에 대한 해법을 탐색하고 대책을 세우기는 커녕 사드맹신론만 퍼뜨리는 것은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여론도 마찬가지다. 사드를 반대하면 ‘종북·사대’라는 딱지를 붙이고, 찬성하면 ‘우리편’이라는 천박한 편가름이 판을 치고 있다. 틸러슨의 메시지를 가장 오독한 것은 기실, 국내 일부 언론이다. 시걸이 글에서 강조한 바, 트럼프 백악관이 이미 옵션에서 제외한 선제타격론이나 전술핵 도입을 대서특필하면서 의도적 또는 습관성 오독을 반복했다. 미국에서는 학자와 기자의 평범한 설전일지 모르겠으나, 우리에게는 그나마 진지한 논의도 없다는 점에서 헛헛함을 남긴다. 왜, 우리는 충분히 진지하게 토론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