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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산책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2]프랑스 좌파 포퓰리즘의 전위에는 분노한 노인들이 있다

by gino's 2017. 4. 19.

좌파 연대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의 대선후보 장 뤽 멜랑숑이 지난 4월16일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툴루즈/EPA연합뉴스

■분노한 노인들이 거리로 나왔다. 청년들을 만났다.

좌파 포퓰리즘은 극우 포퓰리즘의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아니다. 전혀 다른 세계관에서 등장해 세를 늘려왔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국의 좌파 포퓰리즘의 핵심에 분노한 노인들이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좌파 포퓰리즘을 말할 때 빼놓을 수없는 것이 2013년 95세를 일기로 타계한 ‘영원한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이다. 에셀은 92세 때인 2010년 <분노하라·Indignez vous!)>라는 소책자를 발간, 유럽 판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지침을 내렸다. 지난 해 미국 대선 판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올해 76세다. 프랑스 대선에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는 장 뤽 멜랑숑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a France insoumise·프랑스 앵수미즈)’ 후보는 65세로 오히려 ‘전사(militant)세대’의 막내 쯤에 해당한다. 늙은 전사들은 놀라운 적응력을 보였다. 무엇보다 SNS를 통해 분노한 시민들을 네트워킹하고 그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메시지를 퍼뜨리는 소통의 전문가들이다. 그 소통을 통해 젊은이들과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 없이 답답한 현실과 앞이 보이지 않는 전망이 짓눌려 분노를 정당하게 표출할 출구를 찾지 못했던 성난 젊은이들이다. 에셀은 월가 금융위기 탓에 유럽대륙에 긴축재정이라는 이름의 현실권력이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 상황에서 “인간이고 싶으면 분노하라”라고 외쳤다. 샌더스 역시 느닷 없이 등장한 포퓰리스트가 아니다. 30여년 전부터 홀로 외쳐온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되, 소통의 플랫폼을 SNS로 확대했을 뿐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공립대학 등록금 면제, 의료보험 개혁, 자유무역협정 반대 등의 주장은 오래된 구호다. 그럼에도 좌파 포퓰리스트들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보통사람들의 쌓인 분노가 많아졌다는 변화의 증좌이다. 멜랑숑의 대선 지지율이 3위까지 치솟은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펜만 쓰던 시대에 등장한 만년필에 모두가 곧장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컴퓨터와 통신혁명이라는 새로운 문물을 먼저 받아들여 소통에 활용한 역전의 노장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 그 뜻이 젊은층과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분노를 네트워킹하고, 소통에 나선 늙은 전사들은 같은 노인이지만 민족전선(FN)의 창당멤버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장 마리 르펜을 비롯한 분노한 극우 전사들은 알제리 독립전쟁의 패잔병들이다. 장 마리 르펜부터 준사관으로 참전했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강한 프랑스’에 대한 향수에서, 그렇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불만을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쏟아내는 퇴행적 전사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우익쿠(羽翼)과 피가 통한다. FN의 노인 전사들에게는 덴노(天皇)에 대한 충성이 없지만, 제국주의를 동경한다는 점에서 일란성 쌍생아와 같다. 반면에 좌파 민족전선의 늙은 전사들은 인터내셔널 노래에 주먹을 흔들던 세대다. 나치 치하에서는 레지스탕스로 가장 격렬하게 투쟁을 했고, 이후 대량생산시대에는 좌파정당과 노동조합 등을 통해 ‘공화국의 가치’가 실현되는 과정을 주도했으며, 이후 세계화 시대 변방으로 몰려났던 세대다.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FN의 노전사들이 마린 르펜이라는 새 지도자에 밀려 전열의 후위로 밀려났다면, 프랑스 앵수미즈의 노전사들은 여전히 전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도 다르다.

장 뤽 멜랑숑이 4월17일 파리 시내 센강의 유람선에 올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멜랑숑 기사에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이며 ‘멜랑숑이 보트를 흔들고 싶어한다’는 타이틀을 달았다.<br />멜랑숑 트위터 계정

장 뤽 멜랑숑이 4월17일 파리 시내 센강의 유람선에 올라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자본시장의 이익을 대변하는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멜랑숑 기사에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을 곁들이며 ‘멜랑숑이 보트를 흔들고 싶어한다’는 타이틀을 달았다. 멜랑숑 트위터 계정

■몽디알리스트(mondiallistes·세계주의자)&파트리오트(pariotes·애국자)의 대결
멜랑숑의 좌파 포퓰리즘과 마린 르펜의 극우 포퓰리즘이 갈라지는 지점에 다른 유전자가 있다. 멜랑숑이 연대와 민주주의라는 좌파의 가치를 움켜쥐고 있다면, 르펜은 프랑스의 가톨릭 정체성과 반 이슬람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 정치인의 정체성은 좌파와 우파, 통합주의자와 유럽회의론자(주권주의자)라는 두 개의 잣대로 구분됐다. 좌파 안에도 유럽회의론자들이 있고, 우파 안에도 통합주의자들이 있다. 두 개의 잣대의 조합이 만드는 4개의 정체성으로 규정해왔다. 하지만 좌우 포퓰리즘이 기성질서(ancien regime)를 흔들고 있는 이번 대선에서는 새로운 구분이 생겼다. 르펜은 대선을 ‘몽디알리스트와 애국주의자들의 대결’이라고 규정했다. 자신의 민족전선(FN)을 ‘애국자들의 정당’이라고 강조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좌파의 멜랑숑도 반 몽디알리스트이다. 하지만 맹목적 애국자는 아니다. 중도 ‘전진(앙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은 열린 프랑스와 닫힌 프랑스로 양분한다. 르펜의 구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분의 아젠다는 르펜이 먼저 설정했다. 유럽통합을 둘러싼 찬·반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만큼 프랑스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날선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버니 샌더스 역시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단순히 유럽통합 문제를 떠나 자본·상품·사람의 자유이동에 기반을 둔 세계화에 대한 반대 분위기가 곳곳에서 세를 불리는 형국이다. 좌파 포퓰리즘이 ‘어차피 개방과 세계화에 반대해온 골통들’이라고 무시만 할 수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이다. 그 연원 역시 결코 얕지 않다.

■1999년 ‘시애틀 전투(The battle of Seattle) 승리’ 이후 오랜 좌절
반 세계화 운동이 국제적인 연대를 넓혀가던 1999년 늦가을, 프랑스 연수중이던 기자는 벵센느-생드니 대학(파리 8대학) 유럽연구소의 강의실에 앉아 있었다. 그날 수업을 맡은 베르나르 카센 교수(유럽연구소장)는 그해 11월30일 미국 시애틀에서 열릴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다룬 르몽드 기사를 프린트한 A4용지를 학생들에게 돌렸다. 카센 교수는 반 세계화 운동을 벌여온 ‘시민지원을 위한 국제 금융거래과세 추진협회(attac·아탁)의 공동 발기인이다. 기사는 바로 시애틀 회의 안건 중에서도 투자자 국가소송제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었다. 그 끝에 파리 외곽 우앵의 동네 체육관에서 열렸던 아탁의 첫 국제연대회의에 참석했었다. 당시 기준으로 하루 1조달러가 넘는 국가간 투기자본 이동에 1~5%의 토빈세를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세계화의 모순을 치유하자는 취지에 브라질 노동자당 대표를 비롯해 각국의 운동가들은 뜻을 모았다. 아탁과 미국 산별노조연합(AFO-CIO) 등이 주축이 된 4만명의 시위대는 격렬한 가두투쟁으로 결국 WTO 각료회의의 아젠다를 무산시켰다. 뉴 밀레니엄을 앞두고 국제무역의 룰을 정하려던 WTO 시도가 먹히지 않자 각국은 양자·다자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방향을 틀었다. 투자자국가소송제는 한·미 FTA에서도 핵심 이슈였지만 결국 관철됐다. 반 세계화 진영은 이후 매년 대안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세계사회포럼(WSF)를 개최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세계화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오랜 좌절 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각국의 국내 좌파 포퓰리즘이다. 지구 차원의 자유무역협정이 실패한 뒤 양자·다자 FTA로 분절됐듯이, 반 세계화 운동도 각국 별로 분절된 셈이다. 국제적 연대가 엷어지고, 세계화의 희생자들의 삶이 더 어려워지면서 각국별 다른 토양에서 다른 이유로 분노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장 뤽 멜랑숑이 4월16일 툴루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연단에 ‘기업 내 민주주의’라는 피킷이 보인다. 르펜의 유세장이 그렇듯이 멜랑숑의 유세장도 많은 유권자들이 쌓인 분노와 희망을 쏟아내는 출구이기도 하다.        툴루즈/ EPA연합뉴스

장 뤽 멜랑숑이 4월16일 툴루즈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연단에 ‘기업 내 민주주의’라는 피킷이 보인다. 르펜의 유세장이 그렇듯이 멜랑숑의 유세장도 많은 유권자들이 쌓인 분노와 희망을 쏟아내는 출구이기도 하다. 툴루즈/ EPA연합뉴스

■긴장하는 국제 자본시장

프랑스의 좌파 포퓰리즘은 기존의 반 세계화 정서에 더해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주권주의자들의 결합이다. 그 안에서 이민자·난민·치안 정책에 대한 가치의 충돌이 극우와 좌파를 나눈 것이다. 르펜의 포퓰리즘은 좌파의 영역이었던 반 세계화 운동의 흐름에 종교적(가톨릭) 정체성과 맹목적 애국의 옷을 겹쳐 입고 등장했다. 국제 자본시장이 프랑스 대선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좌우 포퓰리즘이 공유하고 있는 반 자유무역, 반 유럽, 반 세계화 특성 때문이다. 지난 주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와 독일 국채의 수입률 격차는 75bp(0.75%포인트)로 벌어졌다. 당초 낙승이 예상됐다가 부패스캔들에 휘말린 중도우파 ‘공화주의자들’ 프랑수아 피용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희박해졌던 지난 2월의 기록 77bp 보다는 약간 낮지만 정치적 리스크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보다 안전한 독일 국채로 옮겨타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르펜은 어차피 결선투표에서 떨어질 것으로 보았지만, 멜랑숑의 막판 돌풍을 예사롭지 않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4190727001&code=970205#csidx6ac74b2bfa748d982aaa43b93754a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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