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장을 한 고등학생들과 ‘우연히’ 마주치자 손을 흔들고 있다. 가디언 캡처
■“트뤼도가 생산하는 이미지는 광고(PR)스턴트일 뿐이다”
트뤼도 총리는 최근 밴쿠버에서 조깅을 하다가 ‘우연히’ 프롬(고등학교 졸업 댄스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해변으로 나온 젊은이들의 행렬과 만났다. 트뤼도는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며 활짝 웃는 얼굴로 일행을 지나쳤다. 그 장면이 마침 사진으로 찍혀 SNS에서 유통되고, 각국 언론이 게재한다. 한국 언론도 예외는 아니다.
느닷없는 총리와의 조우에 학생들은 환호를 하고, 유튜브와 트위터, 페이스북에 총리와의 만남을 올려놓는다. 국민적 지지가 높은 미남 총리와 학생들의 만남을 담은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러나 실상은 트뤼도 만 달린게 아니었다. 개인사진사 아담 스코티가 더 앞서 달렸다. 프롬 일행을 포착하고 가장 앵글이 좋은 위치에 카메라를 설치해놓았다. 가장 이상적인 순간을 찍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된 세트였다. 아름다운 사진은 결국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트뤼도 특유의 ‘이미지 정치’의 생산물이었던 것이다. 캐나다방송(CBC뉴스)의 로빈 어백이 지난 25일 꼬집어놓은 대목이다.
조깅 중 우연히 고등학생들을 만난 트뤼도 총리(왼쪽사진)와 학생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CBC뉴스 홈페이지 캡처
어백은 “정치에 종사하거나, 정치를 보도하거나 아니면 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느낌이 좋은 뉴스’는 정부가 선전(PR)을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의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트뤼도의 이중성을 질타했다. 어백은 ‘진실로부터 그만 도망쳐라, 저스틴 트뤼도는 PR스턴트로 우리와 놀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뤼도는 조작된 이미지의 달인이라면서 캐나다 국민과 전세계 언론에 주의를 당부했다. 거의 일주일 단위로 산뜻한 이미지의 사진이나 신선한 메시지를 생산해내는 이미지 정치인이라는 지적이다. 캐나다 언론인 제스 브라운에 따르면 ‘소셜미디어의 달인(savant)’이다.
■1주일 단위로 신선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유튜브 강아지(puppy) 동영상’과 같은 정치인
실제로 트뤼도는 요가하는 모습을 공개하거나, 짧은 셔츠 차림으로 엔리케 페나 니예토 멕시코 대통령 옆에서 조깅하는 사진, 웃통을 벗은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젊은이의 모습 등을 생산해왔고 그때마다 각국 미디어는 이를 소개했다. 판다를 껴안거나 난민과 포홍하는 사진 역시 ‘우연히’ 찍혀서 SNS와 미디어에서 인기리에 소비된다. 2015년 11월 젊고 똑똑하고 인기높은 총리에 취임 한 뒤 잊을만 하면 반복되는 이미지다. ‘우연히’ 야생의 배경에 웃통을 벗은 채 찍힌 사진은 두장이다. 하지만 모두가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운은 트뤼도를 ‘유튜브(에서 주목도가 높은) 강아지 동영상의 정치적 등가물(equivalent)’이라고 풍자했다.
꽃미남 지도자는 언제봐도 기분을 좋게 한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27일 시칠리아 타오르미나에서 열린 선진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와이셔츠 차림이 젊은 이미지를 한껏 돋보이게 한다. 하지만 캐나다 언론인들 중 일부는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실질적인 정책을 보라고 충고하고 있다. 타오르미나/AP연합뉴스
이쯤되면 “잘 생긴 것도 죄나” “정치인은 누구나 이미지를 활용하지 않나” “트뤼도 처럼 젊지도, 잘생기지도 못한 기자의 푸념”이라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면의 진실이 감춰진다면, 문제가 아닐 수없다.
■멋진 이미지 뒤에 숨겨진 진실
트뤼도는 젊은이들은 물론 캐나다 국민이 좋아하는 말을 자주 내놓는다. 젠더 평등과 기후변화에 대한 진보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 가디언의 빌 매키븐 기자는 지난 4월 캐나다 환경운동가들 및 여권운동가들의 말을 빌어 트뤼도가 보여주는 ‘포옹의 정치(Politics of Inclusion)’의 이면을 고발했다. ‘저스틴 트뤼도에 더이상 혼을 빼앗기지 마라. 그는 지구의 재앙이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우선 기후변화 문제. 트뤼도는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고발한 앨 고어 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와 비슷한 이미지를 주고 있다.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캐서린 맥키나 캐나다 환경장관은 파리 기후협약 회담에서 기후 상승을 1.5℃에서 막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트뤼도의 평소 지론을 공식석상에서 확인한 것이다. 박수갈채가 쏟아진 것은 물론이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10일 국회의사당에 데리고 온 어린 아들과 함께 있는 모습. 트뤼도 총리는 이처럼 신선한 이미지가 담긴 사진을 거의 1주일 단위로 생산한다고 한다. 캐나다 총리실 홈페이지
■기후변화 대책 강조하면서, 트럼프의 미국과 키스톤XL 송유관 계약 성사
하지만 트뤼도는 캐나다 앨버타주의 역청모래층에 매장된 1730억배럴의 원유를 뽑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 휴스턴 석유업계 연설에서는 “어떤 나라도 1730억 배럴의 석유를 땅에서 찾아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기염을 토했다. 1730억배럴의 원유가 야기할 지구온난화 효과는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류가 줄여야할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0%나 된다.
전 세계 인구의 0.5%에 불과한 캐나다가 지구 차원에서 줄여야할 이산화탄소의 30%를 배출하겠다는 것이다. 두가지 사실을 겹쳐보면 파리 기후회의에서 트뤼도 정부가 밝힌 입장은 수학적으로, 윤리적으로 하얀 거짓말에 불과하다. 트뤼도는 미국 측과 지난 1월24일 앨버타주의 원유를 미국 네브라스카주로 가져오기 위한 키스톤 파이프라인 계약을 150억 캐나다 달러에 계약하고 득의양양하기도 했다.
■젠더평등 문제도 취임 2년 째 정책적 변화로 이어지지 않아
젠더평등 문제는 어떤가. 캐나다 사상 첫 남여 동수 내각을 출범시킨 그는 여권수호를 위한 전사를 자처한다. 그런 이미지를 발산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종됐거나 살해당한 캐나다 원주민 여성 수천명의 가족들에게는 머나먼 이야기라고 가디언의 아시파 카삼 기자는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하는 남여 임금 차별문제도 취임 2년이 다되가도록 별다른 진전이 없다.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지난 2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열린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다른 나라 정상들과 함께 서 있는 모습. 트뤼도 총리 옆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파올로 젠틀리오니 이탈리아 총리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트뤼도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조적으로 신선한 인상을 준다. 타오르미나/AP연합뉴스
■트럼프는 혐오를 자아내지만, 적어도 위선자는 아니다
트뤼도가 인기를 끄는 또다른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차별성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반이민행정명령을 내놓자 트뤼도는 “종교에 상관없이 전쟁과 박해를 피해 떠나온 모든 이들을 환영한다”면서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기후변화에 관한 한 트뤼도는 트럼프의 동지나 다름 없다. 키스톤XL 송유관 문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환경파괴 및 기후변화 우려에서 2015년 봉쇄했던 계획이다. 트뤼도는 환경문제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트럼프가 취임하자 곧바로 계약을 성사시켰다.
맥키븐은 가디언 기고문에서 “트럼프는 너무 눈에 띄게 끔찍해서 바라보기 민망할 정도”라면서 “하지만 (미국)북쪽 나라의 (트뤼도처럼) ‘멋진 위선자’는 아니다”라고 썼다. 트럼프는 화석연료산업의 이익을 위해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기도 하다. 기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나 내놓는 메시지가 모두 그렇다. 맥키븐은 ‘트럼프는 지구를 모욕하고 있지만 최소한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지는 않는다”는 말로 기고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