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서울 도렴동 정부중앙청사 별관 17층에선 사상 처음으로 대한민국 외교부 장관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만남이 이뤄졌다. 김성환 장관은 50분 가까이 이용수·강일출 할머니의 북받친 항의를 고스란히 들어야 했다.
이날 만남은 외교부가 달라졌음을 내보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역대 외교부 장관들은 그동안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면담 요청을 한사코 묵살했다.
이 자리는 역설적으로 우리 정부가 그동안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위로의 마음을 전하는 데 얼마나 게을렀던가를 새삼 깨닫게 했다. 국가가 없어서 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벌어진 국민의 비극에 어떠한 자세로 접근할 것인지, 이 경우 국가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관한 한 한국과 일본 정부는 공동정범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일본 정부는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이 배상 문제가 법적으로 종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한국 정부는 할머니들이 피맺힌 이야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 나름대로 조치를 취했지만 근본적 해결은 회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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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할머니들의 노후생활을 살피는 한편, 일본 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요시위가 1000회를 넘도록, 피해 할머니 234명 중 171명이 돌아가시도록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은 게 없다. 정부가 해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의 결정 뒤 부랴부랴 일본 정부에 양자협의를 제안했을 뿐이다. 일본 측의 답이 없자 최근 들어서는 제3국의 중재 회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사이 세월은 쏜살같이 흐르고 있다.
생존 할머니들의 평균연령이 87세다. 오죽하면 이용수 할머니가 “외교통상부는 일본 외교통상부입니까”라고 되물었겠는가.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기만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등 법적 해결책을 하루빨리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된다. 이날 만남은 헌법재판소가 지적하지 않은 정부의 또 다른 부작위(不作爲·마땅히 해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않음)를 드러냈다. 일본이 변하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지금 당장 장관이건, 대통령이건 ‘국가’가 나서서 할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