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논설위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오는 8월1일부터 금융거래에 0.1%의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공표했다. 1999년 시애틀 세계무역기구 총회 무산 이후 반세계화 진영의 화두였던 토빈세가 잘하면 연내에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 나라만 토빈세를 도입해봐야 결실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학자 제임스 토빈이 1972년 처음 제안한 토빈세는 국경을 넘는 주식·채권·외환 등 모든 금융상품의 거래에 부과해 투기자본의 폐해를 줄이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 또는 국제 금융거래의 주요 국가들이 동시에 도입하지 않으면 먼저 도입한 나라만 자본 이탈에 따른 피해를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은 1980년대 토빈세를 홀로 도입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달 초 사르코지와 함께 오는 3월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전까지 토빈세 도입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안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하지만 독일은 최소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차원에서 함께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접지 않고 있다. 비유로존인 영국과 미국 등이 외면한다면 이 역시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사르코지의 이번 발표는 대선을 80여일 앞두고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대선후보에게 밀리는 상황을 역전해보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섞여 있다. 오는 4월 대선에서 그가 패배하면 물거품이 될 공약인 셈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인사하고 있다.
l 출처 : 경향DB
하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질서를 지지해온 프랑스와 독일의 우파 지도자들 사이에서 토빈세 도입이 거듭 논의되는 것은 그만큼 현 세계경제 체제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는 또 하나의 방증이다.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는 못했지만 부자들의 사교 파티라는 스위스 다보스포럼조차 ‘자본주의의 위기’ 경고음을 내보낸 것과 같은 주제의 변주곡이다. 재벌개혁 목소리를 높이는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각국의 보수세력들이 자신들이 안주 또는 지지해온 구체제와 적어도 표면적으로 작별을 고하려고 하는 양상이 지구촌 차원에서 벌어지는 셈이다.
가까운 시일 내에 토빈세가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토빈세를 주장하는 목적도 다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토빈세가 자주 거론되는 것 자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 이대로는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