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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 산책

민족주의, 전쟁, 학살, 절반의 진실 3 - '우리안의 라트코'를 경계한다

by gino's 2017. 11. 29.

미국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의 한 공원에 있는 남북전쟁 때 남부군 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 지난 8월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폭력시위 뒤 검은 장막이 씌워졌다. 위키페디아


■보스니아 1992년&샬롯츠빌 2017년, 상징과 기억의 전쟁 

장면1=미국 버지니아주의 아름다운 고도 샬롯츠빌의 해방공원에서 지난 8월11일부터 이틀 동안 벌어진 연합우파 집회는 그야말로 극우의 종합판이었다. 백인우월주의 KKK와 남북전쟁 당시 남부동맹 부흥주의자, 신나치를 비롯한 극우주의자들이 연합했다. 반 유대주의 구호도 새나왔다. 남부동맹의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E 리장군의 동상을 없애자는 여론이 커지는 것에 반발해 모인 사람들이다. 이들 중 한명이 맞불시위를 벌이던 행렬로 승용차를 몰아 30여명에게 상처를 입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자들을 두둔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파장이 커진 집회였다.

장면2-보스니아 전쟁은 ‘날조된 공포’가 촉발시킨 전쟁이자, ‘기억의 전쟁’이었다. 처음엔 세르비아계에 대항해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가 함께 싸우다가 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 크로아티아계-세르비아계, 세르비아계-보스니아계 등이 물고 물리는 혼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상대를 ‘악마화’하기 위한 상징들이 동원됐다. 하나같이 과거의 상징들이었다. 우선 세르비아계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괴뢰국 ‘크로아티아 독립국’의 파시스트 정파인 우스타샤의 상징을 소환했다. 지금도 크로아티아 국기에 들어가 있는 적·백 체크무늬 문장(紋章)이다.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정파 우스타샤의 상징. 적·백 체크무늬는 지금도 크로아티아 국기에 표시돼 있지만, 세르비아인들에겐 공포의 상징이다.

2차대전 당시 크로아티아 파시스트 정파 우스타샤의 상징. 적·백 체크무늬는 지금도 크로아티아 국기에 표시돼 있지만, 세르비아인들에겐 공포의 상징이다.


■우스타샤·체트니크·예니체리·남부군 깃발, ‘역사의 무덤’에서 꺼내온 증오의 상징들

포퓰리즘은 상징과 기억에 기생한다. 본능적으로 분열과 증오를 숙주로 삼기 때문이다. 현재에서 분열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주저없이 지나간 분열과 증오의 상징 및 기억을 소환한다. 남북전쟁 이후 12년 동안 ‘재건(Reconstruction)’의 기치 아래 북군의 점령통치를 받았던 딕시랜드(Dixieland, 옛 남부연맹 지역)의 좌절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탈냉전 뒤 미국의 극우시위대는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커와 함께 140여년전 남부동맹의 상징을 소환했다. 보스니아에서는 2차대전을 넘어 수백년 전 오토만제국 시절의 상징까지 소환됐다. 

2차대전 중 크로아티아인들을 테러공격했던 세르비아인들의 무장단체 체트니크의 상징.

2차대전 중 크로아티아인들을 테러공격했던 세르비아인들의 무장단체 체트니크의 상징.

2차대전 중 우스타샤에 대항했던 세르비아인들의 집단은 체트니크(Chetnik)이었다. 크로아티아계와 무슬림들을 상대로 테러를 벌였다. 크로아티아인들과 무슬림에겐 역시 증오의 상징이다. 종종과 종교와 무관하게 구성됐던 티토의 유격대(빨치산)도 공격대상이었다. 국제유고전범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보스니아인들은 세르비아계를 경멸의 의미를 담아 ‘체트니크’라고 불렀다. 보스니아 무슬림들은 2차대전에서 증오의 상징을 찾지 못했다. 해서 더 오랜 과거의 상징을 소환했다. 바로 오토만제국 시절 주로 보스니아 지역에서 차출됐던 예니체리였다. 오토만에 부역했던 보스니아인들과 달리, 오토만에 저항했던 세르비아인들에겐 증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우스타샤는 전쟁 중 세르비아계와 무슬림, 집시, 유대인 등에 대해 무차별 인종청소를 저지른 ‘제2의 나치’였다. 유고연방 통계청은 우스타샤로 인한 희생자를 59만7323명으로 잡고 있다. 이중 34만6740명이 세르비아인, 8만3257명이 크로아티아인이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세르비아인들이나 무슬림들이 자다가도 놀라 깨어날 적·백 체크무늬 깃발을 들고 전쟁에 나선 것이다.

1946년 9월16일자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한 요시프 티토. 1990년대 보스니아에선 티토와 같은 ‘통합의 상징’이 ‘증오의 상징’으로 대체됐다.

1946년 9월16일자 미국 시사주간 타임의 표지인물로 등장한 요시프 티토. 1990년대 보스니아에선 티토와 같은 ‘통합의 상징’이 ‘증오의 상징’으로 대체됐다. 


■사라예보의 과거는 포퓰리즘의 미래일까 

1990년대 초 보스니아 전쟁은 어찌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유고연방의 붕괴와 신천지를 열어야할 동인이 적었다는 말이다. 현재에서 증오를 발견하지 못한 민족주의 정치인들이 과거에서 증오의 상징을 소환했다. 수백년 동안 살았던 삶의 터전이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 먼곳에 떨어져 있는 동포가 죽임을 당한다는 거짓 정보, 이 모든 공포를 부추기고 조작한 정치의 세가지 요소가 파괴적인 칵테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전쟁 후 남북의 영토가 크게 차이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세 민족의 거주지는 보스니아 전쟁 뒤 약간의 조정과정을 거쳤을 뿐 누구도 압도적인 영토상 이익을 얻지 못했다. '약간의 조정' 과정에 20만명이 죽고 300만명이 난민이 됐다. 

1992년 사라예보 도심의 정부청사가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불타고 있다.  전쟁은 1984년 동계올림픽 주최도시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 위키페디아

1992년 사라예보 도심의 정부청사가 세르비아계의 포격으로 불타고 있다. 전쟁은 1984년 동계올림픽 주최도시를 석기시대로 돌려놓았다. 위키페디아 

유고연방이 애시당초 분열될 운명이었다는 시각은 서구 중심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본다. 1차대전 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과 오토만제국(세르비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의 지배를 받으면서 종교(가톨릭과 정교회)와 문자(키릴문자와 로마알파벳)가 달라졌지만, 남(Yugo) 슬라브 민족들은 40여년 간 통합을 구가하고 있었다. 그 밑둥에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연맹(SKJ·유고 공산당)’이 있었다. 유고공산당의 분열이 밀로셰비치나 프란요 투즈만, 알리야 이제트베고비치 같은 민족주의자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직 전파되면서 비극이 잉태됐다. 유고연방이 현대사에서 이룩한 통합의 정신, 통합의 상징을 과거사에서 소환한 증오의 감정, 증오의 상징으로 대체한 것이다. 

무슬림 밀집지역 사라예보의 비극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1973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정현숙 선수가 금메달을 딴 곳으로 알려졌다. 1984년에는 제16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현대화된 도시다. 하지만 전쟁과 함께 세르비아계의 포위가 1425일(1992년 4월5일~1996년 2월29일) 동안 계속됐다. 특히 저격수들의 인간사냥이 치명적이었다. 1만여명이 숨졌다. 사라예보 축구경기장은 시체가 많아지면서 공동묘지로 변했다. 단순히 전쟁의 참상으로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거짓 공포의 확산→공포의 증오화→충돌로 이어지는 메커니즘이 사라예보에 남긴 것은 보스니아의 과거이자 포퓰리즘이 제시하는 미래상일지도 모른다. 

사라예보 포위 20주년을 기념해 2012년 4월6일 사라예보 도심에 재현된 레드라인. 희생자 1만1541명의 숫자에 맞춰 붉은 색 의자로 만든 선이다.  위키페디아

사라예보 포위 20주년을 기념해 2012년 4월6일 사라예보 도심에 재현된 레드라인. 희생자 1만1541명의 숫자에 맞춰 붉은 색 의자로 만든 선이다. 위키페디아

■포퓰리즘, 세계의 발칸화(Balkanization)? 

작금에 확산되는 구미 포퓰리즘과 보스니아 전쟁은 모두 민족주의와 거짓 공포, 증오의 감정이 야기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포퓰리즘이 수평적으로 확산되는 반면에 유고연방의 민족주의는 기성 정치인으로부터 수직적으로 내려왔다. 역사적 기억을 호출했다는 점에서, 또 정치적으로 하달된 프로파갠다라는 점에서 수직적이다. 세계화의 패배자들 사이에서 수평적으로 시작했지만 수직화의 실험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예외다. 유고연방의 민족주의가 사회주의의 연대와 제도를 붕괴시켰다면, 트럼프의 미국은 민주주의의 톨레랑스와 제도를 흔들고 있다.

보스니아 전쟁에서 거짓 공포와 증오를 퍼날랐던 언론도 달라졌다. 이제는 라디오나 TV, 신문과 같은 기성 매체의 역할이 크지 않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미디어가 더욱 효율적으로, 더욱 빠르게 증오를 확산시킨다. 트럼프에게는 나치의 괴벨스와 같은 선전의 고수가 필요치 않다.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지지자들과 직접 소통하면 되기 때문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깃발. 지금도 미국 극우파들의 시위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의 깃발. 지금도 미국 극우파들의 시위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직면한 위협은 단순한 민주주의 가치의 위기에 그치지 않는다. 조작된 공포와, 소환된 증오가 이미 샬롯츠빌 사태에서처럼 사회적, 문화적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그 불온한 에너지가 밖으로 향할 때 세계 역시 불안정해질 공산이 크다. 보스니아 전쟁과 포퓰리즘이 한반도에 던지는 메시지도 간단치 않다. 북한의 핵위협에 노출된 한반도는 한국전쟁에서 잉태된 증오의 감정이 여전히 시퍼렇다. 단순히 온라인 상에서 골통우파와 친북좌파 간에 댓글싸움 만 벌이는 게 아니다. 태극기 시위대와 촛불 시위대의 충돌에서처럼 물리적 충돌로 번지고 있다. 과거의 증오와 현재의 갈등이 비극의 칵테일로 발전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국제유고전범재판(ICTY)에서 지난 11월22일 종신형을 받은 라트코 믈라디치는 정규 사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군장교였다. 증오의 광기에 휩쓸리지만 않았다면 지금쯤 퇴역군인으로 명예로운 노년을 보낼 수있었다. 우리안에도 잠재적인 라트코 믈라디치는 많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1281556001&code=970100#csidxe5044dc1685a2f38b7b0272f1d49c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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