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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신년 벽두부터 중국을 경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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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18. 1. 1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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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지난 3일 허베이성 바오딩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 자리에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명령을 하달했다. 바오딩 | 신화연합뉴스


“우리는 호주 민주주의가 다른 어떤 나라의 위협도 되받아 낼 탄력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지난달 7일 맬컴 턴불 호주 총리가 외국인의 정치적 개입을 막기 위해 도입한 법안 취지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턴불 총리는 굳이 “새 법이 중국이나 중국계 호주인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 공산당과 연결된 중국인 사업가가 호주의 양대 정당에 수백만달러를 뿌려 국내외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 취해진 조치다. 야당인 노동당의 스타 정치인은 중국의 재정적 지원을 구걸했다는 의혹에 상원의원직을 내놓아야 했다. 차이나 머니가 자국 정당에 대한 외국인의 기부를 허용하는 호주 국내법의 허점을 비집고 국내정치와 선거에까지 들어왔다는 위기감이 임계점에 도달했다.


호주 정부의 단호한 조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고민에서 나왔다. 중국은 호주에도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 유학생들만 매년 180억달러를 쏟아붓는다. 부동산과 농지에 대한 중국인의 투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호주 민주주의의 ‘가치’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당과 국가가 한몸인 당국가체제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장 직을 겸한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3일 허베이성 바오딩의 인민해방군 동원훈련장에 군복 차림으로 참석해 중앙군사위의 명령을 하달하고 있다. 바오딩/신화연합뉴스 


2017년이 각국의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했다면, 2018년은 중국에 대한 경계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혁·개방 30년 동안 중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양대 축으로 하는 자유주의 세계질서에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는 깨졌다. 세계는 더 이상 중국의 변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이제 화두는 불공정 무역관행을 넘어서, 자유주의 체제의 가치를 위협하는 중국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로 좁혀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에 중국을 러시아와 함께 경쟁자로 규정했다. 정치적 또는 준정치적 분야에서 외국 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을 통제하는 ‘외국요원 및 등록법안(FARA)’의 강화를 저울질하고 있다. 중국 국영언론과 싱크탱크들에 의한 선전과 정보왜곡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최대 교역상대인 유럽연합(EU) 안에서도 중국 경계 움직임이 뚜렷하다. 민간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회(ECFR)는 지난달 연례보고서에서 “중국이 언젠가 서구의 규범과 가치를 향해 움직일 것이고, 국내적으로도 자유화(liberalize)할 것이라는 두개의 신화는 깨졌다”면서 ‘새로운 현실주의’ 시각을 갖고 중국과 상대할 것을 권고했다. 2009년부터 중국 평가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는 ECFR은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권위주의적 현대화는 유럽과의 어떠한 수렴도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유럽은 이제 차이나 머니의 신기루에서 벗어나 중국 투자에 대한 전 EU차원의 심사, (중국에 휘둘리는 국가별) 분산을 공동전략으로 대체, (중국의) 새로운 투자가 관계의 다른 측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방지할 것을 제안했다. 마지막으론 아시아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파트너들을 지렛대로 삼을 것을 제안했다. 


독일 연방정보기관은 최근 중국이 독일 정치인들과 외교관들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캐고 있다고 밝혔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중국의 유럽 투자는 기회뿐 아니라 위협을 제기한다”면서 EU가 중국의 역내 투자에 대한 조사와 잠재적으로 제한하는 조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이 유럽의 열린 경제와 기술로 이득을 보면서도 자국 내 많은 분야에서 외국인 투자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가운데 나온 주장이다.


덴마크 국제관계연구소의 루케 판테이 연구원은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중국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파키스탄은 140억달러 규모의 댐 건설계획을 보류했고, 인도양에서 중국과의 육상 통로를 열려던 미얀마 관료들은 과연 자국 발전에 도움이 될지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환경파괴 우려로 중국이 건설하고 있는 수력발전소를 재고하고 있고, 아프리카에서도 중국의 철로 및 도로 건설이 토지매입과 현지인 고용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중국이 부채를 탕감하는 조건으로 전략 항구 함반토타를 중국에 99년간 빌려주기로 한 스리랑카 정부도 주권을 넘긴다는 야당과 여론의 공격에 직면해 있다. 도처에서 중국이 돈만 밝힌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판테이 연구원은 “2018년은 중국으로부터의 도전에 대응하려는 새로운 노력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중국에 가장 큰 타격은 ‘트럼프의 미국’일 것이다. 올해로 30년이 된 개혁·개방은 미·중 관계정상화 30년과 거의 겹친다. 아이로니컬한 사실은 미국이 경계하는 차이나 파워는 상당 부분 미국이 제공했거나, 중국이 도용한 과학기술에서 나왔다는 점이다. 마이크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센터장에 따르면 지미 카터 행정부가 덩샤오핑과 과학기술협력을 강화키로 합의한 이후 미국이 제공한 과학기술·군사기술 협력프로그램은 100개에 육박한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핵과 미사일 기술도 포함시켰다. 중국은 여전히 미국의 기술을 탐한다. 그럼에도 1989년 톈안먼 시위 이후 자국 교과서에 미국을 중국을 흔들려는 사악한 국가로 규정하고 국내 반미 민족주의를 부추겨왔다. 중국은 미국의 지적재산권으로 부당한 이득을 보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미국을 제치고 패권국가가 될 야심을 갖고 있다는 게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비롯한 ‘트럼프 팀’의 중국관이다. 트럼프 스스로 자유주의 질서를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내놓지만, 유럽과 미국 조야에서 갈수록 짙어지는 중국 경계론의 큰 흐름은 정확하게 읽고 있다. 


한국에 중국은 교역의 화수분이다. 지난해 무역수지 흑자의 40%에 달하는 390억달러를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하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이 보여준 행태는 한·중관계 역시 변곡점에 처해 있음을 각인시켰다. 미국 미사일방어(MD) 시스템에 포함됨으로써 강대국 정치에 휘말렸다는 논쟁과 함께 ‘중국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지점이다.


중국은 단체관광객의 한국 방문에 제동을 걸었고, 한국 기업들에도 불이익을 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달 방중을 계기로 실타래처럼 얽힌 사드 갈등 해소의 물꼬를 텄다고 하지만 허투루 넘길 사안이 아니다. 아직 깔끔하게 해소된 것도 아니다. 국가 간 경제적 보복은 있을 수 있다. 사드가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보복을 하더라도 ‘룰’(rule)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자유주의 질서 안에서 게임의 규칙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자유무역협정(FTA)에 공공연하게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사드 갈등 속에 한국 기업들에 가했던 조치에는 룰이 없다. 중국이 언제든 한국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무법자임을 확인시킨 셈이다. 대통령의 국빈방문 수행 기자에 대한 폭행은 우발적인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중국식 완력의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은 유독 중국 앞에 서면 약해진다. 일본에 과감한 것과 사뭇 다르다. “중국은 원래 그렇지 않나. 그렇다고 어쩌겠는가”라는 체념론이 만연돼 있다. 1992년 수교 당시에는 오히려 한국 경제가 중국에 도움이 됐다.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외교 일선에서조차 중국에 할 말을 못하는 관행이 굳어졌다. 압도적인 경제이익의 정량적(定量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운명론이 지배적이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 가치와 미래 한국의 체제와 관련해 중국의 위협을 별로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 당연히 어떠한 대처 시스템도 고민하지 않고 있다. 미국·유럽과 달리 학계와 언론, 정계, 재계를 동원해 자신들의 입맛대로 여론을 조성하려는 중국의 선전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진호의 세계읽기]각국엔 이미 ‘중국 경계론’ 팽배…한·중 관계 이젠 ‘질’을 따져야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수년 전부터 명·청 교체기에 비유해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모호한 양자택일론이 퍼져 있다. 경제적 운명론과 마찬가지로 힘의 향방만을 좇는 오류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은 “단순히 힘의 세기에 주목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체제, 어떤 삶의 질을 추구하는가에 비추어 힘의 성격을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관계를 정성적(定性的)으로 톺아봐야 한다는 말이다.


중국이 자유주의 질서의 규범과 가치에 편입될 것이라는 서방의 기대가 깨졌듯이,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도 깨졌다. 중국은 한국의 국가적 명운이 걸린 북핵 문제에서도 해결 의지 및 능력의 한계를 내보인 지 오래다. 유엔 안보리 결의라는 세계 정치의 경계를 넘지 않고 있다. 세계는 중국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검토하고 있다. 경제는 운명이 아니다. “‘차이나+1(중국 외 생산기지 하나 더 구축)’이나 ‘차이나 패싱’과 같은 문제는 경제주체가 판단할 문제다.”(양갑용 성균중국연구소 연구실장) 호흡을 길게 가질 때가 됐다. 우리도 이제는 한·중관계를 장기적 국가전략 차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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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801051719005&code=970100#csidx06e2c41abefe6f7b520c447c64921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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